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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광만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교육사학회 교육사학연구 교육사학연구 제34권 제2호
발행연도
2024.10
수록면
85 - 11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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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영조 대 한성지역 동몽교육정책의 전개 과정을 크게 3시기로 구분하여 고찰하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영조 전기(즉위년∼18년)는 숙종 대 중반 이후 와해된 동몽교육을 재건하기 위해 우수한 동몽교관을 선발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이때 영조가 동몽교관의 자격으로 주목한 것은 기본적인 실력 이외에 당파성 문제였다. 숙종 대에 당론이 분열된 이후 부형이 자제를 동몽교관에게 보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조는 지속적으로 ‘학문지사(學問之士)’나 ‘산림유학식지인(山林有學識之人)’을 강조하였고, 그 결과 영조 16년(1740) 경에는 동몽교관들 모두 뛰어난 선비[名下士]로 인정받을 정도가 되었다.
둘째 영조 중기(19년∼33년)는 전기 정책의 성과를 바탕으로 동몽예강을 정상화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영조 19년(1743)에 「동몽예강절목」을 제정한 것이 그 시발점이다. 그러나 동몽예강의 실행률은 최대 30% 정도에 그쳤고,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시작한 영조 25년(1749) 이후에는 한 차례도 시행하지 못하였다. 셋째 영조 후기(34년∼52년)는 친림 동몽강을 중심으로 동몽교육정책을 추진하였다. 친림 동몽강은 영조가 동몽교관과 동몽을 소집하여, 직접 고강하는 시험으로서 전례가 없는 방식이었다. 영조는 이러한 친림 동몽강을 영조 34년(1757) 2월부터 영조 51년(1775)년 6월까지 총 38 차례 시행하였고, 단계적으로 수위를 높여갔다. 한편으로는 『소학 』고강의 수준을 높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화자제의 참여를 독려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영조 말년에는 많은 경화자제들이 동몽교관에게 나아가 『소학 』을 공부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그에 따라 동몽예강도 정상화되었다. 이점에서 영조 후기의 친림 동몽강은 한성지역 동몽교육의 변화를 이끈 선봉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Ⅰ. 서론
Ⅱ. 영조 전기(즉위년∼18년): 유능한 동몽교관의 확보
Ⅲ. 영조 중기(19년∼33년): 동몽예강의 정상화
Ⅳ. 영조 후기(34년∼52년): 친림 동몽강의 시행
Ⅴ. 결론
참고문헌
요약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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