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경영사학회 경영사연구 경영사연구 제31권 제2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33 - 54 (2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연구는 박문수가 최초로 시행했던 국가적 규모의 기업적 생산방식의 자염생산 사례를 통해 박문수의 기업적 생산체제와 기업가 정신을 고찰한 것이다. 박문수의 이런 생각이 탄생하게 된 조선사회의 역사적 배경과 특징이 오늘날 한국 기업인의 기업가 정신과 국민의 기업관과 어떠한 역사적 연계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18세기에는 만성적인 국가재정부족과 흉년, 전염병 등으로 국가재정의 조달방안이 가장 심각한 국정과제였다. 따라서 박문수는 국영의 자염생산을 가장 단기간의 효율적인 방안으로 제시했다. 박문수는 명지도를 적격지로 선택하여 소금생산의 위험과 부담감을 함께할 동료로 송징래와 함께 소금생산에 들어갔다. 연료로 사용할 목재를 매입해서 조달했으며, 목재의 수송과 제염, 생산된 소금의 유통에 힘쓴 인부들에게 임금을 지급했고, 중간관리자들에게도 적절한 포상을 하며 고용했다. 박문수는 1731년 가을부터 1732년 봄까지 명지도에서 18,000석의 소금을 생산했고, 1733년에는 16,000여 석의 소금을 생산했다. 이후 박문수의 성공사례는 「영남자염절목」, 「호남자염절목」으로 제정되었고, 자염사업은 다른 지방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박문수의 소금생산방식은 조선 최초의 기업적 생산방식이었다. 원자재와 노동력을 경제적인 방식으로 조달, 고용했고, 생산성과 효율성, 수익성의 발전을 추구했으며, 지속적인 생산시설투자와 기술개발을 추진했다. 박문수는 이 방식을 생재(生財)로 표현했으며 생산의 양적 확대를 통해 국가재정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문수의 진휼론은 새로운 기업론이며 사업보국의 정신이었다. 또한 시원적 개념의 인재경영을 했다. 조선의 전통적 인재 판별기준에서 과감히 벗어나 전문적인 경영능력이라는 새로운 자질을 제시했고 이를 적극 활용했다. 이런 박문수의 기업가 정신이 현재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가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사업보국의 연원이었다는 점은 본 논문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만 박문수의 자염사업은 끝까지 진휼정책으로 국한되어 장기적인 사업장, 즉 온전한 기업으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21)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