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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광만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교육사학회 교육사학연구 교육사학연구 제33권 제1호
발행연도
2023.4
수록면
143 - 177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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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인조~숙종 대 성균관 과시의 운영 상황을 분석한 내용이다. 주요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 후기 성균관 과시의 기본 틀이 마련되었다. 인조대까지만 해도 정기 과시는 이전의 방식에 따라 전강/절제/생진윤강·윤차로 시행되었지만, 현종 대에 이르면 전강/절제/통독으로 변화한다. 그러나 숙종 1년(1675)에 통독이 폐지되고, 숙종 28년(1702)에 새로운 통독이 재개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변화의 완료 시점은 숙종 후기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성균관 과시의 영향력이 증가하였다. 인조~현종 대의 정기 과시는 규정된 횟수(전강 6회, 절제 5회)에 비하여 현저하게 낮은 수준(전강 1.3회, 절제 0.6회)이었다. 그러나 숙종 대부터 시행빈도가 점차 증가하여, 숙종 전기에는 절제의 시행 빈도가 연평균 2.3회로 이전에 비하여 4배 증가하였고, 숙종 후기에는 친림전강을 강화하였다. 이에 따라 직부전시자도 인조~현종 대 연평균 0.4인에서 숙종 대에는 3.0명(전기 3.3인, 후기 2.7인)으로 7.5배로 급증하였다. 셋째 성균관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과시를 정책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인조~현종 대에는 규정 내에서 제한된 방식으로 성균관 과시를 시행하는 소극적 접근에 머물렀지만, 숙종 전기에는 도기전강과 도기제술을 도입하고, 숙종 후기에는 통독을 재개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궁극적으로 강제겸비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숙종 대의 시도는 영조와 정조 대 성균관 과시 정책의 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목차

Ⅰ. 서론
Ⅱ. 인조~현종 대의 성균관 과시 운영
Ⅲ. 숙종 전기의 성균관 과시 운영
Ⅳ. 숙종 후기의 성균관 과시 운영
Ⅴ. 결론
참고문헌
요약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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