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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교육사학회 한국교육사학 한국교육사학 제42권 제1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61 - 88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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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대원군 집권기, 개항기, 갑오개혁 이후의 세 시기로 나누어 한국 근대 시기에 전통교육체제가 어떤 변화를 모색하였고 그것이 어떻게 좌절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대체로 말하여 대원군 집권기의 경우 전통적 교육체제는 서원 철폐라는 위기 속에서도 성균관․향교 등 관학의 진흥이라는 기회를 동시를 맞았다. 하지만 아직은 위정척사(衛正斥邪)의 명분에 치중하여 시세에 부응한 변화의 모색까지는 나아가지 못하였다. 1876년의 개항 이후 개화 정책이 본격화하는 1880년대의 경우 조선 정부는 육영공원(育英公院) 등 신식교육을 확대하면서도 「신설학교절목(新設學校節目)」(1886) 등을 통한 전통교육체제의 개편을 병행하는 교육개혁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시기 경주부윤 정현석은 1882년에 향공보거법(鄕貢保擧法)에 따른 지방교육 진흥책으로 작성한 「향학조례(鄕學條例)」를 통해 전통적 교육체제와 신학문의 공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태학규제(太學規制)」(1893)에서 볼 수 있듯이, 적극적인 개화 정책 속에서 조선 정부가 선택한 유학교육(儒學敎育) 진흥 정책은 갑오개혁 1년 전까지도 여전히 유효하였다. 그러나 1894년의 갑오개혁 이후 조선 정부의 교육개혁 정책은 전통교육을 배제한 채 신학제(新學制)를 수립하는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하였고, 이에 따라 성균관․향교 등 전통적인 유학 교육기관들은 학제상의 의미를 상실한 채 점차 형해화해 갔다. 결국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성균관․향교 등 전통적인 유학 교육기관들은 학교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문묘 향사를 위주로 하는 교화 기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오랜 기간 전통적 교육체제를 지탱해 왔던 힘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한국 근대교육의 동력으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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