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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종우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열상고전연구 제58호
발행연도
2017.8
수록면
283 - 306 (24page)
DOI
10.15859/yscs..58.20170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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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다산 정약용이 사단칠정설에 대한 연구를 비판하면서 왜 그가 그 설에 대하여 연구하였는지에 대하여 그 원인을 구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는 공자의 도란 수기치인(修己治人)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학자들이 평생 사단칠정설을 연구하는 것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연구는 수기치인에 속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단칠정설을 연구하면서 주희의 그것을 비판한다. 정약용의 사단은 천리의 공에서 발현할 뿐만 아니라 형기의 사에서 발현하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칠정도 형기의 사에서 발현할 뿐만 아니라 천리의 공에서 발현하기도 한다고 주장하면서 주희를 비판하였다. 하지만 그가 사단과 칠정 모두 천리의 공과 형기의 사에서 발현되었다고 주장한 것은 이황을 사숙한 이익의 영향을 받았다. 정약용이 사단과 칠정에 모두 천리의 공과 형기의 사가 있다고 하면 사단과 칠정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는 사단과 칠정을 구분하는 것 보다 천리의 공과 형기의 사를 구분하는 것을 더 중요시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그가 사단칠정설을 연구하는 것을 비판하면서도 그것을 연구하였다. 왜냐하면 사단칠정설은 수기치인의 이론적 기초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성리학자들이 수기치인과 무관하게 사단칠정설을 연구하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사단칠정설을 수기치인과 연속선상에서 연구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사단이란 천리의 공이고 칠정이란 형기의 사이며 천리의 공으로서 형기의 사를 제어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수기치인이라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그는 당시 성리학자들이 수기치인과 무관하게 사단칠정을 연구하는 것을 비판하였던 것이다. 또한 정약용이 율곡학파는 기발이승일도설을, 퇴계학파는 이기호발설을 고수하면서 상대를 비판하면서 논쟁하는 것을 종식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 그러한 논쟁을 그는 공리공담으로 여기고 유학의 본지로서 수기치인으로 복귀하고 그 차원에서 사단칠정설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 때문에 정약용은 그들의 사단칠정설 연구풍토를 비판하면서도 그 역시 수기치인에 관련하여 사단칠정설을 연구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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