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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병남 (국가기록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11집
발행연도
2019.6
수록면
29 - 61 (33page)
DOI
10.52271/PKHS.2019.06.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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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말 한반도의 상황은 7세기 중반 통일전쟁기의 각축 못지않았다. 고구려와 백제・신라가 뒤얽힌 분쟁은 계속되었다. 고구려의 대규모 공세가 남쪽으로 향함에 따라 백제와 신라는 자구책 모색에 노력하였는데 이 시기 『삼국사기』의 기록에도 양국이 협력하여 고구려에 대응하는 모습이 종종 보임에 따라 이를 ‘나·제 동맹’의 지속이라 보았다.
그러나 관련 기록을 재음미해 보면 백제와 신라의 협력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양국의 협력이 지속적으로 유지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485년 백제의 사신 파견과 493년의 혼인 결속을 통해 협력 기반이 마련되었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는 쌍방이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연출하는 등 첨예한 대립을 보였고, 지지부진한 관계 수립 노력에 개별적으로 고구려의 침공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결국 493년에 혼인을 통한 협력 관계를 수립하였지만 그 과정 속에서 ‘동맹’이 자국의 이해관계보다 우선하여 유지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한편, 493년에 수립된 양국의 협력 관계는 494년의 신라 살수의 들판·견아성 전투와 495년 백제 치양성 전투에서 상호 원조를 통해 효력을 보았다.
하지만 496년의 ‘우산성’ 전투에 백제가 지원하지 않고, 501년에는 백제가 신라 침공에 대비한 탄현 목책 설치로 균열이 나타났다고 이해되었다.
그러나 496~497년 사이 백제와 신라는 내부적인 자연 재해에 직면하였다. 특히 백제는 497~502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자연 재해를 통해 매우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더불어 498년 남쪽의 탐라에 대한 복속 문제에 집중하면서 신라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또 501년의 탄현 목책 설치도 고구려에 대한 대응을 전제로 한 관계와 별개인 가야 문제로 파생된 불협화음이 개재되어 있었다.
이처럼 대내외적인 상황은 고구려에 대항하는 백제와 신라의 협력 관계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하였지만 이것이 곧바로 대고구려 연합전선의 와해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백제와 신라의 밀착 과정 재음미
Ⅲ. 혼인 결속 이후 양국의 관계와 그 의미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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