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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장미애 (가톨릭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80輯
발행연도
2024.11
수록면
71 - 95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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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후반, 삼국의 대립이 본격화되며 백제와 고구려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백제와 고구려 사이에는 서북한 지역의 낙랑군과 대방군이 완충지 역할을 했으나, 313년과 314년 고구려의 공격으로 이들이 쇠퇴하면서 양국은 직접적인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369년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했으나 치양 전투에서 패배하였고, 이는 백제와 고구려가 처음으로 맞붙은 전투였다. 이 전투 이후 양국의 대립은 본격화되었고, 백제와 고구려의 전쟁은 신라, 가야, 왜 등 주변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백제는 366년 신라에 사신을 보내는 등 주변국과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 있었으며,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왜와의 동맹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특히, 『일본서기』 기록에 따르면 백제는 왜와의 교섭을 통해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 했고, 이는 고구려에 대응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으로 볼 수 있다. 4세기 말부터 백제와 고구려간 전쟁은 주변국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제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고구려는 396년 광개토왕이 즉위하면서 다시 백제를 공격하였고, 백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고구려군은 한성을 점령하고, 백제는 고구려에 항복하면서 고구려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광개토왕의 공격으로 백제는 수십 개의 성과 마을을 잃었으며, 아신왕은 고구려에 항복해 영원히 고구려의 노객이 될 것을 맹세하였다.
백제는 고구려의 강력한 공세에 맞서기 위해 왜와의 연대를 더욱 강화하려 했고, 397년에는 태자 전지를 왜에 인질로 보내면서 양국의 연대가 본격화되었다. 이후 백제-왜 연합군은 고구려를 공격하는데, 404년 대방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백제는 왜와의 연대를 통해 고구려에 맞섰으나, 대부분의 전투에서 패배하며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열세에 놓였다.
백제는 전쟁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고구려와의 전쟁을 지속할 동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또한, 아신왕의 사망으로 백제의 고구려에 대한 강경 노선도 쇠퇴하였으며, 고구려 역시 400년대 초 후연과의 전쟁으로 인해 백제와의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변경했다. 이후 5세기 중반까지 양국은 큰 전쟁 없이 외교적 대립을 이어갔고, 백제와 고구려의 전쟁은 언제든 재개될 수 있는 잠재적 상태로 남아있었다.
백제와 고구려 간의 전쟁은 단순한 두 나라의 갈등이 아닌, 주변국들과의 외교와 군사적인 관계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는 국제적인 사건이었다. 4~5세기 동안 백제는 왜와의 연대, 신라와의 외교를 통해 고구려에 대응하려 했으나, 광개토왕의 강력한 군사력에 밀리며 어려움을 겪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4세기 후반~5세기 초 백제와 고구려의 전쟁 양상
Ⅲ. 4세기 말 백제-왜의 通好와 對고구려전의 관계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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