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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창은 (제주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45호
발행연도
2019.4
수록면
33 - 93 (61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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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4~7세기대 삼국 간 전쟁의 발발양상과 그것이 가지는 시대적 의미를 고찰하였다. 4세기 중반~5세기 후반까지 삼국의 전쟁은 고구려와 백제가 주도하였다. 4세기 후반 광개토왕 즉위 전까지는 백제가 우세했고, 광개토왕~장수왕대는 고구려의 승세 국면이었다. 4세기대 전쟁에서는 광개토왕과 근초고 · 근구수왕 등 국왕의 親征횟수가 다른 시기보다 많았다. 또한 황해도와 한강 일대의 농경지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요소가 전쟁의 주요 발발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6세기 전반~중반의 삼국 간 전쟁도 고구려와 백제가 주도하였다. 그것은 주로 한강 유역을 둘러싼 공방전이었다. 5세기 후반까지 고구려의 남진에 대해 신라와 백제가 공동 대응하는 형세였다면, 6세기 들어서는 548년까지 나 · 제동맹군의 활동이 나타나지 않는 점이 특징적이다. 6세기대 고구려 · 백제 간 각축전에서 빗겨나 있던 신라는 551~553년 한강 유역 공취와 554년 관산성 전투를 승리함으로써 백제에 우위를 점했다.
6세기 중반~7세기 중반에는 백제와 신라가 삼국 간 전쟁을 주도하였다. 특히 백제가 무왕~의자왕대 지속적으로 신라를 공격하였다. 백제는 전라 동부지역의 옛 가야 방면뿐만 아니라 추풍령로와 무주-김천 방면에서 전방위적으로 신라를 압박하였다. 옛 가야 방면에서는 낙동강 유역까지 진출하면서 성과를 거두었지만, 금산-영동과 무주-김천 방면에서는 신라의 역공을 받았다. 이 시기 발발한 602년의 아막성 전투는 무왕에게 정치적 부담을 증대시켰고, 642년의 대야성 전투는 김춘추의 정치적 입지에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대야성 전투가 648년의 나 · 당동맹을 촉발시켰고, 김유신이 이후 벌어진 일련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었다. 이로써 신라는 백제보다 우위에 서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사비성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삼국시대 전쟁은 전 기간에 걸쳐 보복전의 성격이 짙었다. 전쟁 시에 전사한 고구려의 고국원왕, 백제의 개로왕 · 성왕, 신라의 김품석 부부 등은 전쟁의 명분과 내부의 결속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구려의 남진과 백제 · 신라의 군사동맹 (4세기 중반~5세기 후반)
Ⅲ. 한강 유역을 둘러싼 삼국의 각축전 (6세기 전반~중반)
Ⅳ. 삼국 간 전방위적 공방전의 전개 (6세기 중반~7세기 중반)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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