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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성호 (한성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61호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47 - 75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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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전반에 신라는 고구려에 종속적인 상태에 있었고, 백제는 고구려의 남진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433년 백제는 신라에 화친을 청하였고, 이를 계기로 양국은 상호불가침 원칙의 羅濟同盟을 결성하였다. 백제는 475년에 고구려에게 한성을 공격받은 이후에 신라와의 관계가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었고, 양국은 본격적으로 고구려의 남진에 대응하였다.
6세기에 접어들어 대외적인 상황에 변화가 발생하였다. 신라는 고구려와 유화적인 관계로 전환하였고, 가야지역을 두고 백제와 미묘한 관계가 되었다. 대가야가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서 신라에 청혼하자, 신라는 이를 가야지역 진출의 기회로 삼았다. 신라가 낙동강을 넘어 서진하자 안라국은 백제를 끌어들여 탁순국 병합을 막고자 하였다. 이렇한 과정에서 양국이 충돌하지 않았던 것은 나제동맹이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529년에 백제는 오곡의 들판에서 고구려군에게 참패를 당하였다. 백제는 가야고지로 진출하는 신라를 막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541년에 백제는 신라에 청화하며 상호 확보한 영역을 인정하였고, 548년에는 독산성에서 고구려에 공동으로 대응하였다. 이어서 551년에 한강유역으로 함께 북진하였다. 그러나 뒤 늦게 신라와 고구려의 밀약을 인지한 백제는 한강유역을 포기하면서 반격을 가하지만 신라는 이를 막아내었다.
신라는 6세기 전반에 나제동맹의 기조 속에서 고구려와 밀약을 맺는 복잡한 외교를 끌고 나갔다. 결국 신라는 나제동맹을 이용하여 고구려와 백제에 대응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반면에 백제는 나제동맹의 늪에 빠져 오히려 신라를 강적으로 키운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나제동맹과 우호관계 성립
Ⅲ. 신라의 양단책, 백제의 딜레마
Ⅳ. 동상이몽의 나제동맹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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