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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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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30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7 - 64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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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7월, 백제가 멸망하자 주변 諸國이 변화된 국제정세를 적극 활용하려 한 것과는 달리 고구려는 별다른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가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인 660년 10월경부터 6개월의 간극을 두고 신라의 七重城과 北漢山城 등을 차례로 공격하였다. 당의 위협이 점증되는 와중에 고구려가 대신라 공세를 추진했다는 점에서 주의를 끈다. 이에 대해 기존 연구에서는 ‘麗․濟連和’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되었던 정책으로 해석해 왔으나, 自國의 國益 추구와 동떨어진 조치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고구려는 신라가 백제 고지에서 백제부흥군 진압에 몰두했던 시기에 칠중성을 공략하여 성공리에 마무리하였다. 나아가 靺鞨까지 동원하여 북한산성을 공격했으나 괄목할 만한 성과는 얻지 못하였다. 고구려가 두 성을 공격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는 두 성이 차지하는 지정학적 위치와 역할 때문이다. 특히 두 성을 공격함으로써 신라의 政情을 불안케 하여 당과의 밀착을 쉽게 허용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후로 고구려는 멸망할 때까지 더 이상 신라를 침공하지 않았다. 무력 침공이 아닌 대외 교섭을 통한 대신라 견제 정책을 추진하였다. 백제가 교섭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황에서 倭만이 부각되었고, 고구려는 이전부터 추진해 온 왜와의 교섭을 보다 적극화하여 신라를 간접 견제하려 하였다. 따라서 고구려가 북한산성 전투 이후로 대신라 공세를 중단했다기보다는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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