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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종욱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조선단군학회 고조선단군학 고조선단군학 제55호
발행연도
2024.12
수록면
235 - 270 (36page)
DOI
10.18706/jgds.2024.8.5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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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5세기 중후반 백제의 동남부 · 동부 · 동북부 영역 판도와 변화상을 검토한 글이다. 5~6세기 중반 백제의 영역은 신라의 소백산맥 이서지역 진출과 고구려의 ⻄南進이라는 국제정세 속에서 퇴축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5세기 중후반 신라는 삼년산성 축조를 시작으로 소백산맥 이서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영역화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기존에 백제의 권역이었던 보은 · 문의 · 옥천 · 무주 일대가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당시 형성된 백제의 동부‧동남부 영역 판도는 『삼국사기』 지리지의 내용과 대체로 유사하지만, 고고학적 출토 자료로 볼 때 문의‧무주 일대는 신라의 영역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때 백제는 청주 · 세종 · 대전 · 금산 · 무주 서쪽 일대를, 신라는 보은 · 옥천 · 영동 · 양산 · 무풍 · 무주 일대를 각각 확보하면서 대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양국의 경계 및 영역 판도는 6세기 중반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된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고구려는 475년 한성 함락을 전후한 시점에 충주를 기점으로 서남진하여 백제의 동북부 영역으로 침투하였다. 모산성 전투가 벌어졌던 484년 시점까지 백제는 진천 일대를 확보하고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일본서기』의 이림 · 대산성 전투기사와 세종 남성골 고구려 유적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5세기 후반 고구려가 음성‧증평 일대로 진출하여 이림(증평 도안)을 장악한 후 미호천 유역을 따라 금강과의 합류 지점까지 진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백제가 청주 일대를 회복하면서 도안-증평 이남 지역을 경계로 고구려와 대치하게 되었고, 그 동쪽 방면에서는 신라가 보은 청천-괴산 방면에서 고구려와 대치했던 것으로 이해되는데, 이 당시 삼국의 영역 판도가 『삼국사기』 지리지에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5세기 중후반 신라의 ⻄北進과 동남부 영역의 변화
Ⅲ. 475년 전후 고구려의 ⻄南進과 동북부 영역의 변화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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