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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초아 (울산대학교)
저널정보
울산대학교 사학회 울산사학 蔚山史學 第十九輯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125 - 149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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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강동지역에서 조사된 통일신라시대 건물지는 ‘Π’자형 건물의 배치, 부속시설, 출토유물 등으로 보아 관부건축의 특정을 보이고 있다. 유적에서 확인된 대부분의 건물지에서는 기와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당시 기와는 국가적인 조영사업의 일환으로 생산·관리되었으며, 신라 왕경 외의 지역에서 기와의 사용은 관부와 사원에 한정되었다. 특히 이들 건물지에서는 평기와 외에도 막새기와가 사용되었다. 신라에서의 막새기와는 건축부재의 기능보다는 건축물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것이었다.
강동지역에 위상 높은 기와건물지가 세워진 것은 신라초기부터 강동지역을 비롯한 동해안 남부일대가 왜의 침입이 잦았다는 점, 강동산하유적의 수막새와 동일한 수막새가 동해안에서 경주로 들어가는 루트를 따라 위치한 호국사찰 유적에서 확인된다는 점 등으로 볼 때 동해안의 안녕(安寧)과 방어체계에 효율을 기하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강동지역은 『삼국사기』에서 율포현(栗浦縣)과 동진현(東津縣)으로 등장하고 있다. 율포는 박제상이 미사혼을 구하러 왜로 떠난 출항지(出港地)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경덕왕 16년 군현제가 개편되면서 율포는 동진으로 개명되었다. 동진은 왜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한 관문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엄관군의 영현(領縣)이었다. 동해안 방어체계정비를 강화하기 위해 신라는 이 지역을 동진으로 개명하고 관부건축을 축조하였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목차

머리말
1. 울산 강동산하유적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2. 건물지 출토 수막새로 본 신라 왕경과의 연관성
3. 율포에서 동진으로의 개명과 그 의미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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