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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주홍규 (영남대학교)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18권 제2호
발행연도
2015.11
수록면
41 - 71 (31page)
DOI
10.17068/lhc.2015.11.1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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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중류의 좌안에 위치하는 고령지역은,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루어 지속적으로 인간활동이 이루어져 온 곳임을 알 수 있다. 고령지역에서는 특히 대가야의 유적과 유물을 대상으로 학술연구가 집중되고 있으나, 대가야가 멸망한 직후와 이어지는 통일신라기에 이 지방의 역사상과 문화에 관해서는 문헌기록이 빈약해 정확한 양상을 파악하기에 많은 어려운 점이 있다. 본 고는 고령지역에서 출토된 통일신라기의 막새기와를 통해 유적의 특징과 조영시기를 파악한 후, 문헌에서 구체적인 양상이 확인되지 않아 그 실상을 파악하기 어려운 대가야 고도의 시대상의 일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대가야읍을 중심으로 한 고령지역에서 출토된 통일신라기 막새기와의 중심연대는 7세기말에서 8세기경이며, 막새기와를 통해볼 때 지산리 30-10번지 유적 일대가 국가사찰로서 중요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연구를 통해 지금까지 문헌기록에서 확인할 수 없는 대가야의 고도에 국가 관련의 불교사찰이 존재할 가능성을 명확히 했고, 대가야읍을 중심으로 한 고령지역의 통일신라기 유적과 유물에 관한 새로운 설정을 할 수 있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고령지역의 구체적인 양상을 문헌기록으로는 알 수 없었지만, 통일신라기 막새기와의 검토 결과로 인해 경덕왕(742-765)이 개명한 8세기 중엽 이전부터 고령지역이 신라의 요충지로 기능하고 있었고, 이 일대에 조영된 사원터의 위상은 매우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가야읍을 중심으로 한 고령과 인근지역에는 통일신라기의 도성이 있었던 경주지역 출토의 막새기와들과 문양적 특징이 유사하지만, 한편으로는 구별되는 양상을 보이는 지산리식 수막새가 있다. 지역성이 강한 재지계의 기와가 삼국을 신라가 통일한 이후에 각 지역에서 제작되고 소비되었을 가능성이 상정된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통일신라기의 기와가 출토된 고령지역의 유적
3. 고령지역 출토 통일신라기 막새기와의 제작연대
4. 고령지역 출토 막새기와로 본 통일신라기의 지역양상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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