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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안주홍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11집
발행연도
2019.6
수록면
121 - 152 (32page)
DOI
10.52271/PKHS.2019.06.1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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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혜공왕대에 始祖와 태종대왕과 문무대왕의 不毁之宗 그리고 親廟 2로 종묘를 개편하였다. 鄭玄은 文王과 武王의 불훼묘를 2祧로 보았다. 2祧는 천자만이 가지는 遠廟이다. 반면 王肅은 두 왕의 불훼묘를 權5로 보고 廟數에서 제외하였다. 신라는 불훼묘를 묘수에 포함하였으므로, 정현이 말한 2祧이다. 따라서 혜공왕대의 개편은 천자 7묘를 지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친묘 2는 직계 2친으로, 원묘인 2祧와 달리 혈연적 계보를 밝힐 수 있는 조상이다. 직접적인 조상은 직계 2친만으로 충분하다는 인식 속에서 친묘 2의 祔廟가 가능하였다. 형제상속으로 位次와 世次가 어긋나면서, 정통성의 근거로 직계 2친이 강조되었다. 효성왕 3년(739)의 祖考廟는 효성왕이 큰아버지인 효소왕을 遷廟하고 그 자리에 아버지인 성덕왕을 부묘한 것을 의미한다.
혜공왕은 2祧를 통해 다른 지배자집단과의 차별성을 드러내고, 친묘 2를 통해 권력 집단의 재편을 꾀하였다. 2祧를 세우면서도 제후 5묘의 묘수를 지킨 것은 일통삼한의 천하관이 가지는 이중성 때문이다. 태종무열왕이후 근친왕족 중심의 지배체제가 확립되면서 왕족 내부에 구별과 배제가 이루어졌다. 직계 2친은 근친왕족의 범위를 규정하는 잣대가 되었다. 혜공왕은 친묘 2를 부묘하여 자신의 정통성을 드러내고 아울러 천묘된 신문왕의 왕자(녀)와 후손들을 근친왕족의 범위에서 제외하는 재편을 도모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不毁之宗의 의미
Ⅲ. 親廟二의 의미
Ⅳ. 황제의식의 표방과 근친왕족의 재편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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