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35집
발행연도
2016.4
수록면
70 - 103 (3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일본의 한국병합 이후 조선의 이왕가(李王家)는 황족(皇族)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다. 왕공족의 각종 사무를 맡은 이왕직(李王職)도 궁내성(宮內省)에 속하여 궁내대신의 지휘를 받았다. 하지만 이왕가는 조선에 있었기 때문에 이왕직의 사무와 직원은 조선총독의 감독을 받았다. 사안에 따라서 궁내대신과 조선총독의 권한은 충돌하였다.
수차례에 걸친 「이왕직관제(李王職官制)」 개정으로 이왕직은 직원을 대량으로 감원하였다. ‘효율적’ 업무 수행과 비용 절감이 겉으로 내건 이유였다. 일본인보다 조선인이 많이 감원되었지만 비용 절감 측면에서는 비슷했다. 일본인 관리이거나 조선인이거나 이왕직은 개편대상이었다. 조직 개편과 감원의 칼자루를 쥔 곳은 조선총독부였다. 조선총독부는 1917년에 차관과 과장 인사를 좌우함으로써 이왕직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차관은 조선총독부 도지사 출신들로 채워졌다.
1928년 장시사(掌侍司)의 폐지를 제외하면 큰 틀의 조직 개편은 1920년을 마지막으로 완료되었다. 지속적으로 축소되었지만 1920년대 이후 정원의 큰 변화도 없었다. 서무와 회계의 요직은 일본인 관리들이 맡고, 제사와 의식 등 전통적 직무는 여전히 조선인 관리들의 몫이었다. 기수(技手)는 일본인, 전사보(典祀補)는 조선인 관리의 영역이었다. 인사의 특징 하나로서 1928년 이후 참봉(參奉)은 전사보 충원의 주요한 경로였다. 사무관과 기사 승진에는 다른 관청과 마찬가지로 일본인이 유리했다.
1920년대 이후 이왕직은 비교적 안정되었지만 그에 따른 불만도 생겼다. 우선 승진의 길이 제한되었다. 차관은 조선총독부에서 파견되었다. 사무관 등 고등관의 수는 한정되었는데, 이왕직과 다른 기관과의 인사교류는 거의 없었다. 만년 과장, 만년 사무관이 이왕직의 모습이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직제와 사무분장
Ⅲ. 직원 구성
Ⅳ. 인사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6)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6-151-002859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