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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동호 (육군본부)
저널정보
육군군사연구소 군사연구 군사연구 제155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1 - 25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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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초기 주요전투 재조명 및 지휘체계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도성 함락과정, 주요전투의 전개과정, 임진강 전투의 패배원인, 신각의 참형과정 등을 살펴보았다. 1592년 4월 13일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은 약 20일 만에 도성을 점령하였다. 조선군은 도성에서 물러나 임진강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도원수 김명원 등은임진나루에 제1방어선을 구축하였으며, 순변사 이일 등은 임진강 상류 대탄에 제2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이 과정에서 해유령·장수원 전투가 벌어졌다. 해유령 전투는 5월 16일 조선 관군이 육지에서 일본군에게 처음 승리한 전투이며, 장수원 전투는 5월 17일 이시언부대가 장수원(현 의정부 장)에서 일본군에게 승리한 전투이다. 해유령·장수원 전투 이후 신각, 이양원, 이시언 등은 임진강 방어선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5월 17일 밤 임진강 방어선은 무너졌다. 지나친 조정의 지휘간섭이 큰원인이었다. 한편 임진강 전투에서 패한 다음 날, 해유령 전투를 승리로 이끈 신각이 갑자기 참형 당하였다. 도원수 김명원이 한강전투 패배의 책임을 신각에게 돌렸기 때문이다. 임진강 전투 패배와 신각 참형사건은 혼란한 군령체계와 조정의 성급한 판단의 결과물이었다. 당시 지휘체계는 대개 文臣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名位와 爵秩이 비슷한 지휘관들은 전황을 제대로 파악을 할 수 없었으며, 엄정한 위계질서를 구축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군령체계는 혼란하였고, 조정과 戰場 간 소통은 원활하지 못하였다. 선조와 조정 대신들은 임진강 방어선의 장수들에게 무리한 공격명령을 내려패배를 자초하였고, 김명원의 말만 믿고 신각을 성급하게 처형하였다. 임진강 전투패배와 신각의 참형사건은 임진왜란 초기 관군의 지휘체계 실태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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