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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방병선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미술사 제57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245 - 273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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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870년대 이후 조선과 일본의 요업 근대화 과정을 분원과 아리타를 중심으로 비교, 고찰하여 조선의 요업 근대화 문제를 파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먼저 일본은 개항과 통상조약의 체결, 유럽내 자포니즘의 유행으로 국내외 도자 수요층이 확산되었다. 1870년 폐번치현 이후 번요가 폐지되면서, 새로운 민요가 등장하여 발전하게 되었다. 일본 정부는 해외 만국박람회 참가를 계기로 도자산업 육성을 목표로 직수출 정책을 펼치는 한편, 『온지도록』같은 공예 디자인 도록을 발간, 배포하고 민간 수출 가마에 도안 지도를 하였다. 또한 생산 주체로 상인들이 등장하여 근대적 회사조직을 설립하거나 관과 공동으로 무역회사를 창립하였다. 관민 협동으로 유럽산 선진 요업 기계와 기술을 수입하고, 외국인 고용을 통한 기술지도로 요업근대화에 박차를 가하였다. 여기에 요업 관련 은행과 공예전문학교가 아리타에 설립되어 정부와 민간의 협업에 정점을 찍었다. 다음 조선 역시 개항과 통상조약체결, 만국박람회 참가 등을 시도했으나 도자 생산과 기술개발에는 별반 영향이 없었다. 다만 누적된 폐단을 시정코자 상인들의 왕실용 자기 생산 참여를 허용하여 1883년 사옹원 분원을 상인물주와 일부 변수가 운영하는 분원공소로 민영화하였다. 일본과 같은 선진 요업 기계와 기술 도입, 요업 금융기관 설립 같은 요업근대화 작업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다만 1900년대 이후 일본 주도의 관립 공업시험소가 설립되어 요업기술 인력 양성이 일부 시도되었다. 결국 1870년대 이후 조선과 일본의 관요 민영화와 근대화 과정은 도자를 산업화하여 부국강병의 근본으로 삼을 것인가라는 인식과 국가와 민간의 협력 여부에 따라 결정되었음을 본 논문은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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