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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명진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82호
발행연도
2022.9
수록면
221 - 251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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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5년(태조 8)에 고려 태조 왕건은 후백제 임존군(임존성, 충남 예산)을 공략하고자 하였다. 임존성과 일대 거점인 운주성(홍성)은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앞서 918년 8월에 모반의 여파로 임존성과 운주성은 견훤의 후백제 영역으로 바뀌었다. 왕건은 즉시 아주(아산)와 예산현을 확실하게 장악하며 영역의 후퇴를 막았다. 왕건이 일대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운주성 탈환이 필요하였다. 그런데 그 선행 조건은 임존성 장악이었다. 925년 10월, 왕건은 유금필을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으로 임명하였다. 유금필은 연산진(일모산성, 충북 청주)을 공격하여 성과를 올리자마자 임존성으로 갔다. 임존성 공격 개시 날짜는 10월 12일부터 14일 중 어느 날로 고찰하였다. 유금필은 임존성을 함락시켰다. 이 전투 시 일단의 지역민들이 고려군에게 협조를 하였다. 왕건은 전투 승리 후 임존군의 새 이름을 포상으로 대흥군(大興郡)이라 하였다. 또한 왕건은 유금필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주었다. 이후 왕건은 임존군전투 승리를 발판 삼아 운주도 장악하였다. 왕건이 최종 승자가 되는데 있어서 큰 밑바탕이 된 요인 중에 하나가 임존군전투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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