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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갑동 (대전대학교)
저널정보
국립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도서문화 도서문화 제52집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7 - 3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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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 성립기에는 전남 출신 인물들의 활약이 컸다. 우선 궁예 통치 시절에 나주가 궁예에게 귀속되는 데에 큰 기여를 하였다. 羅聰禮란 인물이 궁예 밑에 있었던 왕건과 결탁하여 나주를 점령토록 도와주었던 것이다. 이에 궁예는 왕건을 나주에 파견하였고 이 일대를 점령한 후 금성군에서 羅州로 승격시켰다. 이렇듯 궁예가 아닌 왕건을 도와준 것은 이미 이전부터 왕건과 나총례 가문은 왕건과 같은 해상세력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공으로 후일 나총례는 三韓功臣으로 책봉되고 土姓으로 분정되었다. 이렇게 하여 나주의 지배세력이 된 그들은 가끔씩 중앙의 관인을 배출하였다. 그 대표적 인물로 나유·나익희·나영걸·나흥유 등이 있었다.
왕건은 또 나주에 출정하였다가 나주 오씨 부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오씨 부인의 아버지는 吳多憐이었는데 그렇게 번성한 집안은 아니었다. 그러나 왕건과의 결혼을 통하여 부상하기 시작한 나주의 지방 세력이었다. 특히 나주 오씨 부인의 아들인 武가 태자로 책봉되고 태조의 뒤를 이어 惠宗으로 즉위하면서 급부상하였다. 혜종이 죽은 후에는 혜종에 대한 사당을 건립하고 그를 제사함으로써 지배세력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집안은 크게 번성하지 못해 중앙의 관인을 많이 배출하지 못했다.
한편 영암 출신의 최지몽은 태조 8년 경 왕건에게 발탁되어 왕건의 사부 역할을 하였다. 왕건이 꿈에 황룡사 9층탑에 올라갔는데 그것이 후삼국을 통일할 징조라 해몽하여 ‘知夢’이라 이름을 하사받았다. 그와 함께 掖庭院의 供奉직에 임명되어 항상 옆에서 태조 왕건을 보필하였다. 태조의 뒤를 이은 혜종 대에는 왕규의 모반을 미리 예견하여 혜종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였다. 혜종은 무인이었던 박술희의 보필을 받기도 하였다. 이는 태조의 유명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혜종이나 박술희, 최지몽이 다 같이 해상 세력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 대가로 최지몽은 정종 때에 포상을 받기도 하였으나 광종 때에는 실례를 하여 지방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경종 때에 복귀한 그는 左執政 守內史令 관직에 있으면서 왕승의 모반을 미리 예견하여 왕을 위험에서 구매하였다. 그 공으로 후일 경종의 廟延에 배향되는 영광을 누렸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나주의 귀순과 나총례
Ⅲ. 왕건의 혼인과 오다련
Ⅳ. 고려의 후삼국 통일과 최지몽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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