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순교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박순교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저널정보
택민국학연구원 국학연구론총 국학연구론총 제31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203 - 252 (5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경애왕 최후[경애왕의 포석정 유행, 경애왕의 죽음]를 비정하는 주요 전거로 활용되어 온 ≪삼국사기≫ 기록은 서술의 객관성이 의심된다. 경애왕 죽음을 담은 ≪삼국사기≫ 기록은 동시대인인 견훤과 왕건의 편지, ≪삼국사기≫ 찬자의 사관 등 여러 갈래로 해체된다. 그 내용은 착간, 혼돈, 모순으로 요약된다. 기록의 제반 분열 현상은 후삼국 각 지배자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파생한 정치적 사건의 불가피한 소산이었다. 경애왕의 죽음과 포석정 유행은 하나의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거시적 으로는 경애왕 치세 4년 간 왕건과 견훤의 후삼국 쟁패 과정에서, 범위를 좁히면 927년 1년 내내 계속된 왕건과 견훤의 공방의 소용돌이 속에서, 더 작게는 견훤이 경애왕 거세를 표방하며 두 달 동안 고울부에서 서라벌을 향한 심리전을 지속하던 와중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이었다. 그 중에서도, 927년의 흐름과 관건은 전쟁의 연속성이었다. 경애왕의 최후, 포석정 사건은 견훤, 김부, 왕건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놓고 벌인 세 개의 전쟁과, 그 결 사이에서 벌어진 필연적 사건이었다. 경애왕이 쏘아올린 전쟁의 서막[927년 정월 3일], 경애왕의 최후에 이르기까지 후삼국 시대 전황을 축차적으로 조망한 결과, 경애왕 죽음은 경애왕이 벌인 위험한 전쟁[Civil War]의 산물이었다. 아울러 경애왕의 최후는 후삼국 지배 세력들이 각자의 이해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그려낸 ‘弑君’이라는 큰 그림의 한 조각이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