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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동찬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86호
발행연도
2022.5
수록면
175 - 20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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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지평지구 전투는 6·25전쟁에 중공군이 참전한 후 공산군의 대규모 공세에 유엔군이 거둔 첫 번째 승리였다. 이 전투를 계기로 유엔군은 반격으로 전환하여 3월 말까지 문산∼동두천∼춘천∼현리∼양양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는 ‘전쟁 전 상황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반면에 공산군은 지평지구 전투의 패배로 제4차 공세에 실패했다. 그들은 공세의 목표인 대전∼안동 선 진출은 고사하고 오히려 북위 38도선으로 밀려나는 결과를 맞아야만 했다. 지평지구 전투의 전쟁사적 의의는 유엔군과 공산군의 전쟁 전략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유엔군은 ‘전쟁 전 상황에서의 휴전’이라는 전쟁목표 달성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되었으며, 공산군은 제4차 공세의 실패로 인해 방어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1950년 12월∼1951년 1월에 공산군이 계획하던 ‘춘계공세로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 즉 ‘완전 승리’ 구상이 파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공산군의 제4차 공세와 지평지구 전투가 유엔군의 전쟁전략을 ‘철군 < 휴전’으로, 공산군의 전략을 ‘승리 < 휴전’으로 확실히 탈바꿈하게 하는 계기였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시 공산군 측에서는 대외적으로 휴전을 적극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북위 38도선에 형성된 전선 상황이 그들에게 더 이상 ‘군사적 완전 승리’를 보장할 수 없게 했다. 공산군의 제4차 공세와 지평지구 전투의 결과로 유엔군과 공산군 양측은 ‘협상을 통한 휴전’만이 전쟁을 종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편임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향후 전쟁 양상은 ‘협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정치·군사적 행동 양태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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