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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호민 (가톨릭관동대학교)
저널정보
강원사학회 江原史學 江原史學 제31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43 - 65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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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8~19세기 강원 강릉 향촌사회에서 발생된 대립과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었고, 사회사적 측면에서 향촌사회가 어떤 양상으로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보기위해 작성된 것이다. 18세기 이후 향촌사회의 혁신세력이란 구향, 신향 어느 한 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구향과 신향 모두 구습과 잘못된 향촌사회 운영을 개선하고자 하였다. 따라서신향만을 혁신세력으로 보기도 어렵다. 구향이든 신향이든 향촌사회 운영과정에서발생된 모순이나 부정적 현상들을 개선·개혁하고자 했던 사람 또는 세력을 혁신세력으로 보아야 한다. 18세기 이후 강릉에서 발생된 하남재시비, 함헌 별묘중건에 따른 이견, 오봉서원우암추배시비, 도동사 건립에 따른 이견 등은 당시 사회적 변화를 수용하면서 향촌사회를 재조직화하는 과정으로 이해되며, 더 나아가서는 향촌사회의 새로운 활력을 넣어주는 재생력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갈등이 진행되면서 강릉향교 운영과관련하여 여러 변화들이 나타났다. 신향들에 대한 향임 차정, 향교 석전제 제관차정 시 신향들에게 제관 참여 허용, 향교 위토에 대한 관리와 운영에 있어서도기득권을 배제하고 새로운 향촌 사람들에게 위토를 경작할 수 있도록 한 조치등은 갈등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들이라 할 수 있다. 「신구유통행절목」 이후 「향교전답이정절목」이 시행된 점은 향교를 중심으로 한 재지사족들의 고질적인 폐습이개선되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관의 지방통치의 이완 현상이며, 재지사족 주도의 향촌지배구조의 분열을 의미한다. 19세기 강릉지역 향촌사회에 나타난 또 다른 변화 양상은 지역에 보편화된 당색, 즉 서인 노론계열과 관계없는 인물을 중심으로 사우 건립이 추진되고 있었다는점이다. 국가적으로 사우 남설에 따른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개인, 또는 문중 중심의사우 건립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조치 속에서 강릉지방 재지사족들 특히 신향들이중심이 되어 사우 건립으로 추진하였고, 이 과정에서 향교와 협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우의 위치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이들이추진한 사우가 공론화 과정을 통해 건립되고 또한 제향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19세기 후반 강릉지역 향촌사회에 있어서 향촌지배력의 와해 또는 분화를 의미하며, 또 향촌사회 운영 공동체가 문중을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향촌사회가 재편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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