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재빈 (홍익대학교)
저널정보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미술사와 시각문화 미술사와 시각문화 제19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66 - 97 (3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정조(正祖, 재위 1776-1800년)는 1783년 도화서 화원 10명을 규장각에 차출하여 운영하는 차비대령화원제(差備待令畵員制)를 시행하였다. 왕실 도서의 출간을 담당하는 규장각에서 어제(御製)의 인찰(印札) 작업을 위해 화원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차비대령화원들은 명목상의 임무인 인찰 작업 외에도 다양한 화업(畵業)을 담당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정조대 복무하였던 차비대령화원 23명을 중심으로 이들이 구체적으로 담당하였던 업무를 기록을 통해 살펴보았다. 차비대령화원의 업무는 고유 업무와 도화서 화원과의 공동 업무로 나눌 수 있다. 차비대령화원의 고유한 업무는 어제 인찰, 어필(御筆) 비문(碑文) 조성, 관찬(官撰) 도서 출간 등이 있다. 차비대령화원은 서책의 인찰과 도설(圖說), 비문의 전홍(塡紅)과 탁본을 맡았다. 이들은 모두 규장각에서 관장한 사업이라는 점과 국왕의 말과 글씨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비대령화원은 도화서 화원과 함께 도감의 사역과 어진 도사에도 참여하였다. 의궤의 화원 별단(別單)을 종합한 결과 차비대령화원은 통계적으로 일반화원보다 도감에 더 자주 참여 기회를 얻었으며 더 중요한 일에 포진되었고, 따라서 상전(賞典)의 기회도 많았다. 도감 안에서 차비대령화원에게 우선 배당된 일은 책(冊)·보(寶)·명정(銘旌)·관의(官衣) 등 왕실 상징물의 제작이었다. 한편 어진도사 화원은 정조의 특별한 관심을 받았던 김홍도(金弘道, 1745-1806?)와 이명기(李命基, 1756-1802 이후)를 제외하고 전원 차비대령화원들로 채워졌다. 이처럼 어진 도사가 차비대령화원의 기본적인 업무로 자리 잡은 것은 정조가 규장각에 어진의 제작과 봉안을 명하면서부터이다. 본 연구에서는 의궤에 기록된 주관화사(主管畵師)와 동참화사(同參畵師), 수종화사(隨從畵師) 외에도 10명의 전·현직 차비대령화원이 보조로 참여하였음을 추가로 밝혀내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차비대령화원은 국왕의 말과 글, 신체를 재현하는 일을 전담하였다. 다시 말해 이들은 단지 국왕을 위해서 서화를 제작하였다기보다 국왕 그 자체를 시각화하는 일을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