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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리우식 (명지대학교)
저널정보
명지대학교 문화유산연구소 미술사와 문화유산 미술사와 문화유산 제9집
발행연도
2020.12
수록면
37 - 64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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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박성환(朴成煥 1919~2001)은 장장 60여 년에 달하는 긴 화력(畵歷) 동안 일제강점기 지방화단과 세계대전시기 일본 동경화단, 해방 후 북한 미술계와 6·25전쟁기 종군 미술계, 남한의 서양화단 등 한국근현대미술사의 굵직한 순간 모두에 참여하였다. 해주고등보통학교 시절부터 서양화에 입문한 그는 식민지 조선 최고 권위의 《선전》에 입선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문화학원에서 수학하며 3회 연속 《이과전》에 입선한다. 그의 초기 회화는 사생에 기반한 인상주의 풍경화가 주를 이룬다.
해방 후 고향 황해도 해주로 돌아온 그는 해주미술학교의 설립과 운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해방기념종합전람회에서 1등상을 수상하는 등 이북 지역에서 최고 수준의 화가로 회화적 기량을 뽐내었다. 공산당과의 사상적 불화로 월남한 후, 박성환은 6·25전쟁기 동안 종군화가로 활동하게 된다. 이 시기 그는 전쟁기록화로 국방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아카데미즘적 사실주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휴전 이후 박성환은 《국전》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서양화단에 참여하였으며, 1959년에 국전 서양화부 추천작가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당시 서양화단은 구상과 추상으로 양분되어 소모적인 대립을 그치지 않았다. 박성환은 앵포르멜 계열의 추상주의를 시도하면서도 사실주의 계열인 목우회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구상전 결성 주도에서 확인되듯이, 박성환은 사실주의와 추상주의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예술적 다양성과 창의성을 추구하였다.
박성환의 작품은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한국적인 테마와 아름다움을 집중적으로 탐구하였다. 그는 한국 실경 산수를 인상주의적으로 재현함과 동시에 풍요와 결실이 깃든 농가의 모습을 낭만적으로 구현하는 작업도 병행하였다. 박성환의 한국성 탐구는 이후 농무 연작작업으로 이어졌다. 박성환의 농무연작은 한국 전통의 오방색을 거의 원색 그대로 사용하고, 동양화 필법의 율동적 필치를 응용하는 등 독특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수업 및 일본 유학(1919∼1944)
Ⅲ. 미술계 활동(1945∼1970)
Ⅳ. 회화세계의 도전과 변혁(1971∼2001)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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