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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범규 (국방부)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78호
발행연도
2020.2
수록면
41 - 68 (28page)
DOI
10.21490/jskh.2020.02.7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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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부는 숙위를 하면서 왕과 궁정 그리고 왕성인 월성의 警衛를 수행한다. 그런데 그 이외에도 월성 바깥에서의 치안 유지와 방어 역시 관장했다. 이러한 모습은 이미 시위부가 설치되기 이전 비공식적인 왕의 경위조직에서부터 나타났다. 지증왕 10년(509) 신라는 왕경에 東市를 설치하고 두 달 뒤에는 함정을 설치해서 맹수의 피해를 없애고자 하였다. 이 두 사건은 왕성 주변을 왕권으로 통제한다는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시장의 관리와 맹수를 대비를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왕의 경위조직이 순찰을 시작했으며, 이는 시위부로까지 이어졌다. 시위부의 왕성 밖 활동은 里의 구획 안으로 한정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里制의 시행 이유가 수도의 주민들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통제하여 치안경찰을 효과적으로 유지하려 했던 것에 있었다. 이는 신라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시위부가 里가 구획된 왕성 주변을 순찰하면서 치안을 관장했다. 시위부는 왕성 밖 순찰과 더불어 교대를 위한 대기 인원이 활용할 주둔지가 운용되었다. 이를 위해 왕경 내 사찰들을 활용하였으며, 서쪽으로는 흥륜사를 비롯하여 영흥사, 영묘사 등 왕실사찰들을 주둔지로 활용하였고, 북쪽으로는 천주사, 동쪽으로는 황룡사가 활용되었다. 이들 사찰들은 경주 분지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평지에 노출된 월성을 보호하기에 유용하였다. 또한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점 역시 주요 거점으로서 군사적 활용 가능하였다. 이처럼 사찰이 군사적으로 활용된 점은 고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왕경의 사찰들은 점차 궁이 확장되고, 왕경이 발전되면서 그 효용성이 더욱 커져 나갔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Ⅱ. 중고기 시위부의 활동범위와 왕경
3. 시위부의 주둔지 운용과 사찰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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