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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32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59 - 19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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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각종 문헌 자료를 살펴보아 경주의 경관구성을 복원하고 그 위상과 인식 등을 고찰하였다. 경주의 경관구성에 대해서는 사원, 읍치시설, 산천, 행정구역, 교통 등을 검토하였다. 신라 왕실의 중요 사원은 대부분 유적화 되지 않은 채 유지되었다. 몽골 침입으로 피해를 입었음에도 다수의 사원들이 그 기능은 유지하였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상당수가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그에 비해 신라 궁궐은 현종대 유적화하고 읍성을 새로 마련하여 관아 중심부를 형성하였다. 그리고 신라 지역 육부를 모두 변경 개편하였다. 구정과 창고, 병고, 원과 역참 등 기본 시설은 유지하였다. 고려 태조대에 경주는 경주사로 하고, 동남해도부서사의 본영으로 삼았다. 현종대는 계수관체제의 동경유수관으로 하고, 숙종대 남경 건설에 따라 강칭하였다. 예종대는 유수관의 지위를 회복하고 도부서는 분도하여 경상도만의 본영이 되었다. 명종대 이비 패좌의 난 이후 경주사로 강등하였으나 고종대에 위상을 회복하였다. 몽골 간섭하의 관제 격하로 충렬왕대 계림부가 되었다. 공민왕대 관제 복고에 따라 잠시 회복하였으나 원과의 관계를 위한 관제 조정에 따라 다시 격하되었다. 고려 당대인들은 경주를 東都, 陪邑, 下都, 巨鎭, 雄藩, 巨府 등으로 불렀다. 이규보, 김극기 등은 개경, 서경에 대하여 동도, 배읍, 하도 등으로 인식하였다. 몽골 침입으로 피폐된 민들을 위한 새로운 사상 체계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일연, 천책, 체원 등은 신라 불교의 중심이었던 경주의 불교 유산과 그 기반으로부터 도움 받고자 불교도시임을 다시 관찰하고 복원하고자 하였다. 이규보, 김극기와는 달리 이제현, 이곡, 이달충, 하륜 등은 경주를 다소 축소시켜 東南 곧 경상도에서 가장 번화하고 아름다운 으뜸 도시 巨鎭, 雄藩, 巨府 등으로 지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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