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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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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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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24권 제1호
발행연도
2021.5
수록면
111 - 146 (36page)
DOI
10.17068/lhc.2021.05.24.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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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새로운 추수기 자료를 소개하고자 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추수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19세기 지주제의 몇몇 문제들을 간단하게나마 언급하였다. 여기서는 두락당 지대량의 추이, 그리고 米價와의 관계만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1두락당 지대량의 추이는 단기적으로는 큰 폭으로 등락을 거듭했다. 장기적으로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40년대에 이르기까지 파장이 긴 처진 ‘W’형의 중기파동이 있었고, 이후 19세기 6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정체현상을, 다시 70년대에 이르기까지 감소하였다가 이후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다시 긴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 시기 지주제의 여러 연구에서 보여주는 1860년대부터 시작된 두락당 지대수입의 감소가 1890년대를 최저점으로 하여 다시 회복하는 이른바 ‘U’파동과는 달랐다.
대구의 미가 역시 19세기 중반이후 가파른 상승국면을 보였다. 미가와 지대량의 상관관계는 대략 1840년대를 기준으로 하여 그 전반기에는 상호 무관하게 움직였다면, 후반기는 어느 정도 연관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 같은 문제는 결국 19세기 전반기에 비해 후반기가 농업생산력과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을 가진다는 것이고, 전반기에는 환곡을 통한 중앙의 물가조정이 어느 정도 기능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불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 후반기의 지대량과 미가와의 일정한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이 시기의 미가 급등이 곧 생산성의 저하에서 오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더 많은 자료의 발굴이 있은 뒤라야 보다 구체적으로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자료에 대하여
3. 가작지의 규모와 생산량
4. 병작지 경영의 다양한 측면들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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