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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종호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82집
발행연도
2023.11
수록면
51 - 97 (47page)
DOI
10.18496/kjhr.2023.11.8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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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8년(공민왕17) 고려 조정과 대마도주 소 츠네시게(宗経茂)(숭종경(崇宗經)) 간에 성립한 통교 관계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단절되었다. 이듬해인 1369년(공민왕18)부터 1397년(태조6)까지 약 30년 동안 고려・조선 조정과 대마도 간에는 통교 관계가 없는 ‘통교 공백기’ 상태가 이어진다. 이 통교 공백기에 관한 연구는 예로부터 연구자들의 주된 관심 분야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이 통교 공백기는 1368년 고려-대마도 통교 관계와 그 이후 조선-대마도 간의 장기간 통교 관계를 연결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그 학문적 중요성은 크다.
본 연구에서는 통교 공백기의 배경 및 양상에 관하여 특히 규슈 단다이(九州探題) 이마가와 료슌(今川了俊)의 대마도에 대한 영향력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1370년대 일본 막부는 ‘명과의 국교 수립, 규슈 남조 토벌, 왜구 금압’이라는 3가지 과제,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동일한 과제를 성취해야 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규슈 현지에서 그 역할을 담당했던 이가 이마가와 료슌이었다. 실제로 그는 규슈 남조 토벌과 왜구 금압에 진력하였고, 일정 부분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는 그 성과를 바탕으로 일본과 고려・조선과의 외교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상황에서 이마가와 료슌이 막부의 위임을 받아 일본 여타 세력들의 고려 통교를 금지하였던 점, 그리고 그 일환으로서 대마도 역시 고려와의 직접 통교가 불가능했다는 점을 해명하였다. 즉 고려·조선과 대마도 사이에 현안이 있는 경우, 이마가와 료슌은 대마도의 고려·조정과의 접촉을 금지하고 그 대신 그가 직접 일본 막부의 ‘왜구 금압’ 의지를 일관되게 전달하였다. 이마가와 료슌의 대마도에 대한 이러한 영향력은 료슌이 실각하는 1395년(태조4)까지 이어진다.
조선-대마도 간 통교 수립 과정에 관한 기존의 통설은, 조선 측의 경제적 ‘회유책’을 강조하는 경제적 측면에 강조점을 두어 왔다. 그러나 통교 수립 직전까지의 기간, 즉 ‘통교 공백기’의 발생 및 지속의 배경에는 이마가와 료슌이라는 정치적 배경이 크게 작용하였다. 따라서 그 이후 조선과 대마도의 통교 수립 및 전개 과정에서도, 기존 통설에서의 경제적인 측면 외에, 정치·사회 등 제반 측면에서의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통교 공백기의 개념 및 선행연구 검토
3. 통교 공백기의 배경 및 양상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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