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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한석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영산대학교 동양문화연구원 동양문화연구 동양문화연구 제23권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87 - 11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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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7세기 한중일 3국 <노자> 이해의 특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논의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우선 17세기 명말 청초의 왕부지는 <노자연> 「자서」에서 위진 시대부터 명대까지의 역대 <노자> 해석이 <노자>의 원형적 의미를 훼손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노자>의 ‘측기(測幾)’가 일부 정치적 술수로 응용가능하다는 점도 지적하긴 했지만, <노자>의 정치적 방법론적 응용 가능성이 <노자>를 유가의 범위로 수용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여, 그의 사상적 기저인 ‘벽이단’ 강조에 있었다면, 박세당은 성리학을 중심 이념으로 성립했던 조선 개국 이래 지속되었던 ‘<노자>는 이단이다’ 의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노자>의 특징을 ‘수신치인’⋅‘패도’⋅‘사’⋅‘부쟁’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규정하였다. 특히 박세당은 <신주도덕경> 서문에서 <노자>가 위진 시대의 해석에 의해 원형이 훼손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노자』의 본의는 ‘청정한 정치와 무언의 교화’에 있고 이런 『노자』의 원형은 ‘수신치인’을 통해서 그 특징이 압축된다고 강조 했다. 한편 일본 근체 초기 곧 에도 막부 초기 유관으로 활약했던 하야시 라잔의 경우 임희일의 『노자권재구의』를 일본 사회에 소개⋅유포시켰다는 공로는 분명하지만 그의 『노자』 이해는 왕부지나 박세당의 경우처럼 독자적 주석서 편찬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유도합일의 특징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노자권재구의』 수용의 이면에는 에도시대 초기 사회적 통합을 지향했던 하야시 라잔의 이념적 고민이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후 그의 <노자권재구의> 수용을 기반으로 오규 소라이 문하의 켄엔(蘐園)학파에 의해 왕필의 <노자주>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18세기에 이르러 오규 소라이의 문인들을 중심으로 일본 사회에 <노자>에 대한 독자적 주석이 출간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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