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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저널정보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동아시아고대학 제47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65 - 105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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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보호자이자 宗主 역할을 했던 고구려는 5세기대에는 宿敵 백제와의전쟁에 명운을 걸다시피했다. 그 틈을 이용해 신라는 고구려의 영향력에서 벗어났다. 이제 신라는 백제와 함께 공동의 적으로 설정한 고구려의 南進 압박을 타개하고자 했다. 羅濟同盟의 최대 결실은 551년의 한강유역 쟁취였다. 그 이듬해인 552년에고구려는 신라에 通和를 제의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고구려 內紛說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내분설의 기록은 일본측 자료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국내 기록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내분설의 기본적인 근거는 『周書』 기록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기록은원래 기록이 훼손됨에 따라 후대에 보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6세기 중엽 경의 고구려 內情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대신 고구려는 552년부터 무려 23km에 이르는 대규모 도성인 長安城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새로운 도성 축조에 방해가 되는 일이 전쟁이었다. 안정적으로 도성 축조를 위해 고구려는 신라에 通和를 제의한 것이다. 그 직후 고구려는 백제를 공격하여 신라가 안정적으로 한강유역을 지배할 수 있게 하였다. 50년간 지속된 고구려와 신라의 通和는, 신라가 隋와 손을 잡는 바람에 결렬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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