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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창규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동남어문학회 동남어문논집 동남어문논집 제1권 제44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65 - 190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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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설공찬전」 탄생의 문화/문학적 지반과 필화사건에 대한 배경을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동안의 대부분 연구가 ‘소설사적 맥락’에서 「설공찬전」의 위상을 파악하고, ‘훈구와 사림의 대립’이라는 관점에서 필화사건의 배경을 살폈기 때문이다. 15세기에 거대가문이 점차 생성되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태평한 시대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과 자신들의 사소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역사가 된다는 강한 자긍심의 발로에서 잡록이라는 글쓰기 양식을 추구하였다. 채수 역시 이러한 거대가문의 일원으로서 『촌중비어』를 지었고, 그러한 잡록의 전통 속에서 「설공찬전」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실록』의 언급들에서도 『태평광기』ㆍ『전등신화』ㆍ『태평한화골계전』과 같은 부류로서 「설공찬전」이 거론되고 있었다. 「설공찬전」 필화사건은 채수가 가지고 있던 세계관적 실상과 중종반정 이후 추구하고자 하는 사회적 실상의 괴리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채수 개인에게는 불교적ㆍ도가적 세계관이 강하게 나타는데, 이는 중종반정 이후 성리학적 세계관으로 나아가려는 사회적 실상과는 불화하는 것이었다. 중종반정 이후 과도하게 경직된 사회는 엄격한 법적용과 벽이단을 추구하였고, 당시 대간들의 영향이 강해졌던 정치적 상황 속에서 채수의 사형까지 거론되었던 것이다. 채수가 그토록 심한 구설수에 오르게 된 것은 채수 개인의 문제 뿐 아니라 조선이라는 사회가 좀 더 성리학적 경직성의 사회로 전이되고 있었기에 그러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조선전기를 ‘훈구-사림’의 구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각 시대마다 시대정신이 바뀌어가는 상황 속에서 개개의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아야함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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