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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경동 (공주대학교)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84호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169 - 20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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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조선시대 야은 길재에 대한 인식과 위상 변화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시대적 의미를 평가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조선초기 길재는 고려에 대한 忠節을 지킨 인물로서 평가되었다. 길재는 정몽주와 함께 충절과 관련한 상징적인 인물로 표상되었다. 16세기를 전후로 사림에 의해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김굉필-조광조로 이어지는 동방 도통의 계보가 확정되면서 길재는 충절자뿐만 아니라 도학자로서의 위상을 갖출 수 있었다. 이는 조광조로 대표되는 士林派의 정치적․학문적 정당성을 갖추어가는 과정 속에서 전개되었으며, 길재는 정몽주와 조선시대 학자들을 잇는 매개 역할을 하였다. 조선후기 길재에 대한 인식은 관련 지역의 현창, 행적에 대한 평가, 국가 및 민간 차원에서의 해석의 분화 등으로 요약된다. 善山, 仁同, 錦山 등 길재와 관련된 지역을 중심으로 書院이나 祠宇가 건립되면서 길재를 현창하는 활동들이 확인된다. 길재를 배향하는 金烏書院, 吳山書院, 淸風祠 등이 이 지역에 건립되었으며, 길재의 행적을 정리하는 문집 편찬 작업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이와 함께 길재가 고려말 관료로 활동했었고, 이후 조선에서는 출사를 거부했던 출처에 대한 논란도 발생했다. 이에 대한 논란은 길재의 행위를 비판하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비판에 대한 재비판 과정에서 길재의 위상은 한층 강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1738년 길재에게 ‘忠節’이라는 시호가 내려지면서 국가 차원에서 충절과 관련한 그의 위상이 공고화되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충절로 국한된 평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공존하는 등 길재에 대한 평가가 다채롭게 전개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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