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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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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한문학회 한국한문학연구 한국한문학연구 제76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35 - 26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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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를 대표하는 일대 사건인 ‘홍경래의 난’은 아직도 지역의 풍토가 만들어낸 逆賊에 의한 반란인지, 혹은 지역의 독특한 풍정과 기운으로 형성된 英雄이 일으킨 실패한 혁명인지 재再構하고 再考할 여지가 많은 사건이다. 이 글은 19세기에 ‘안주-(가산-정주-곽산-선천-철산-용천)-의주’라는 사건의 현장을 지나가면서 追體驗할 수 밖에 없었던 (개인) 연행록의 저자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서술하게 되는가를 살폈다. 일단,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고 있던 1812년 4월에 귀국하여 그 당시의 현장을 겪은 체험을 일기체로 남긴 연행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李鼎受의 『遊燕錄』(1811-12)이다. 그곳에서는 ‘누가’ 變亂 중에서 어떠한 행동을 하는가의 문제를 주로 다룬다. 그 방법으로 ‘인물의 제시-직접 경험 인물의 증언-인물의 행적 관련 기록 인용’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의병인 김견신과 허항을 잠깐 소개하다가 본격적으로 지방관으로서 忠과 義의 덕목을 발현한 가산군수 정시, 안주목사 조종영을 부각시킴을 알 수 있다. 이들의 행적을 더욱 생생하게 해 주는 증언자로서만 현지인 기생 연홍, 현지인인 김현대가 등장한다. 또한 지나가야만 했던 공간에 대한 관심과 그를 서술하는 특징도 볼 수 있다. 그들이 그려내는 홍경래란 속의 서북 지역은 짧은 사이에 초토화가 된 폐허의 공간이며, 번성했던 과거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기에 더욱 참담함을 느끼게 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것이 ‘變亂’을 치리하기 위한 관군의 대응이 있는 곳이라면 ‘戰場’의 이미지로도 기억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전술한 두 가지의 관심사가 이후 19세기 이 지역을 언급한 연행록에서도 지속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홍경래의 난 관련한 인물로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여전히 가산군수 ‘鄭蓍’와 안주목사 ‘趙鍾永’이 언급되지만, 홍경래난 관련 인물들을 환기하는 접근 방식은 ‘증언’을 통한 것이 아니라 ‘기념비’라는 사적(史蹟)을 통한다는 변화 양상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상태로 정보가 제공되는 것이 아니고 기려져야 하는 방향이 제한되는 역효과도 지닌다. 이후 연행록에서 그려지는 공간 역시 ‘폐허’의 공간인가 아닌가 하는 것들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회복상’도 공간 묘사상 함께 보여주어, 이제 그 지역의 전란은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 아니라 기억으로 소환될 종류임을 시사한다. 기억 속의 전쟁으로 소환될 ‘홍경래의 난’과 관련된 화소(話素)를 꺼내는 장소는 정주, 특히 서북장대로 집중되는데, 그 지역은 많은 희생은 있었지만 결국 역도(逆徒)인 홍경래를 치리하는 승전장(勝戰場)이기 때문에 현재의 상실과 아픔만을 불러내지 않는 ‘옛 전장[古戰場]’으로 자리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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