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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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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한문학회 한국한문학연구 한국한문학연구 제75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99 - 146 (4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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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후기의 시서화 삼절 紫霞 申緯의 墨竹畵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서 먼저 신위의 묵죽화의 연원을 살펴보았다. 신위의 묵죽화는 姜世晃에게 배운 것이다. 따라서 그의 묵죽화론도 강세황의 寫實主義的인 繪畵觀을 계승한 것이다. 신위와 강세황의 사실주의적 회화관은 李瀷으로 연결된다. 신위의 묵죽화론의 기반은 蘇軾의 文人畵論이다. 당시 문인이라면 모두 소식과 文同의 문인화론을 잘 알고 있었고 신위는 창작을 통해 이를 더욱 심화시켰다. 신위의 묵죽화 작품은 15세 무렵과 26세 때 그린 초기작 이외에는 대부분 60대 이후 만년작들이다. 신위는 1812년 44세 때 청나라 사신의 일행으로 북경에 가서 翁方綱(1733-1818)을 중심으로 한 많은 淸朝 문인들과 교유하였다. 그러나 신위의 묵죽화는 중국 여행으로부터 뚜렷한 영향을 받은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신위의 묵죽화는 중국에서도 널리 알려졌으며, 灘隱 李霆, 岫雲 柳德章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로 추앙되었다. 그런데 風竹, 雪竹을 즐겨 그렸던 이정과, 설죽, 筒竹을 즐겨 그렸던 유덕장에 비해, 신위는 雨竹, 霧竹을 즐겨 그렸다. 이정과 유덕장이 題畵詩가 거의 없는 묵죽화를 통해 선비나 은일의 志操를 주로 표현한 데 비해, 신위는 풍부한 제화시를 곁들여 抒情이 풍부한 묵죽화를 그린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신위는 국제적 안목을 가진 대예술가로 당시 북경의 예술계의 동향도 파악하고, 잘못된 경향을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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