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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한문학회 한국한문학연구 한국한문학연구 제75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63 - 98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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紫霞 申緯는 詩․書․畵 三絶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연행을 통해 청나라 翁方綱과 만난 뒤로 청조 학예의 수용에 힘을 쏟았다. 여기에는 秋史 金正喜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김정희는 연행을 떠나는 신위에게 전별시를 써주면서 옹방강과의 만남을 적극 추천했다. 신위는 연경에서 옹방강을 방문하여 그의 수많은 수장품을 보았고, 이는 신위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귀국 후에는 옹방강의 영향을 받아 많은 분야에서 변화가 있었다. 옹방강의 서재인 蘇齋를 모방하여 자신의 서재도 ‘蘇齋’라 하였고, 옹방강의 시집을 탐독하고 그의 시론을 수용하여 조선에 유행시켰다. 자신의 시를 청나라에 유통시키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옹방강의 영향은 신위가 사용한 인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청조 학예의 수용에 앞장선 인물로 김정희가 대표적이지만, 신위 또한 김정희와 함께 기억되어야 한다. 청조 학예의 수용을 통해 김정희가 경학과 금석학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면, 신위는 바로 詩에 있어서 새로운 경지를 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시가 조선을 대표하여 중국에 널리 알려지길 원했다. 김정희가 조선의 소동파로 불렸다면, 신위는 조선의 옹방강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특히 그의 인장에 투영된 옹방강의 그림자는 바로 신위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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