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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33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51 - 193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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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중엽 고구려의 대외관계는 對唐政策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고구려는 645년에 당의 침공을 격퇴함으로써 대내외에 자국의 군사력을 과시하고, 국제적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다만 당이 곧바로 몽골초원에서 흥기하던 薛延陀를 격파하고, 羈縻體制를 확립함에 따라 고구려의 당군 격퇴 여파는 크게 확산되지 못했다. 태종 사망 이후 唐의 長孫無忌 정권이 온건한 대외정책을 펴자, 西突闕이 크게 흥기했다. 이에 고구려는 서돌궐을 통해 내륙아시아 방면의 세력과 연계를 도모하는 한편, 契丹과 신라에 대해 공세적인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고구려가 당의 온건책을 틈타 공세적인 외교정책과 군사작전을 전개하며 당을 견제할 기반을 확충한 것이다. 655년에 성립한 唐의 許敬宗 정권은 강경한 대외정책으로 선회하여 658년 서돌궐을 괴멸시켰다. 그런 다음 신라와 연합해 660년에 백제를 멸망시킨 다음, 곧바로 고구려 원정에 나섰다. 다만 당은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했는데, 고구려 서북방에서 契丹과 鐵勒이 크게 흥기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고구려가 거란과 연계한 사실은 묘지명을 통해 확인되는데, 鐵勒과도 연계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고구려는 다양한 군사전략과 외교정책을 통해 당의 공격을 저지했다. 이에 당은 백제 부흥군과 鐵勒을 평정한 데 만족하며 664년 7월부터 泰山 封禪을 추진했다. 당이 고구려 원정을 보류한 것이다. 이에 고구려는 당과의 관계를 개선할 기회가 마련되었다고 판단하고, 태자 福男을 파견해 봉선의식에 참여했다. 현상적인 추이만 놓고 본다면, 고구려는 멸망 직전까지도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비교적 효과적으로 대응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평가로는 고구려가 내분의 와중에 갑자기 멸망한 원인을 찾기 어렵다. 당시 고구려가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했는지, 또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응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외정책을 수립하려고 고민했는지 등을 더욱 다각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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