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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퇴계학연구원 퇴계학논집 퇴계학논집 제23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41 - 7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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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인간적 만남’을 주제로 한 것이다. 학술 차원의 문제보다 ‘인간적 교류’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퇴계와 율곡은 일생토록 두 차례 만났다. 만남의 횟수가 사귐의 깊이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퇴계와 율곡의 역사적 만남이 있었던 1558년은 퇴계와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이 처음 만난 해이기도 하다. 퇴계의 입장에서 ‘1558년’은 기념할 만한 해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퇴계는 일생토록 율곡을 아끼는 후학으로 예우하였고, 율곡 역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퇴계를 존숭하고 그의 업적을 기렸다.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와 함께 동방유학의 양대 종장(兩大宗匠)으로 받들었다. 율곡이 퇴계에 대해 “퇴계에 이르러 유자(儒者)의 모양이 갖추어졌다”고 한 논평은 퇴계를 보는 율곡의 관점을 대변한다. 퇴계와 율곡은 학설상으로도 차이가 나는 것을 빼놓고는 대립할 만한 소지가 크지 않다.. 퇴계⋅율곡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이론 설명의 방식에 있다.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를 대립적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조선후기 성리학사는 대화와 소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퇴계와 율곡의 만남은 일부 뜻 있는 후학들에 의해 시도되었고, 일정 부분 성취되었다. ‘대화와 소통’이라는 시대의 화두를 통해 퇴계학과 율곡학을 읽어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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