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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49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69 - 108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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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 고구려의 동맹 결성 시점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643년을 그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7세기 『隋書』「백제전」에 보이는 ‘實持兩端’ 기사에 착안하여 그 시점을 607~611년 무렵으로 올려 보고 있다. 『수서』「백제전」에서는 607년 백제 무왕이 사신을 보내 고구려 토벌을 요청했고, 611년에는 軍期를 묻기도 했으나 정작 隋가 고구려를 침공하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隋書』는 백제가 애초부터 고구려와 통화한 채, 隋를 엿본 것이라고 했다. 『수서』가 濟ㆍ麗의 통화시점을 607년으로 인식한 것은 같은 해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렇지만 기존의 대체적인 시각처럼 그것을 부정하거나 중대한 오류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607년 이후 백제가 실제로 대고구려정책을 변화시켰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백제는 대수관계의 개선을 위해 598년과 607년 고구려를 끌어들이기는 했으나 별다른 외교성과 없이 고구려의 보복공격을 당하는 피해만 입었다. 국경을 맞대지 않은 고구려를 견제해서 얻을 수 있는 實益도 없었거니와 한강탈환이라는 백제의 전략적 목표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이에 백제 무왕은 대외정책의 방향을 선회했는데 그것이 바로 『수서』「백제전」에서 말하는 실지양단이다. 무왕은 비록 외교전술이라 할지라도 고구려를 끌어들이는 방법 보다는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로 백제는 607년 이후로 더 이상 고구려와 군사적으로 충돌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신라만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고구려 역시 北으로 隋, 南으로는 신라와 갈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백제와도 대립한다면 심각한 외교적 고립에 처하게 된다. 이렇듯 두 나라 사이에 현실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607년 이후 백제와 고구려의 동맹이 성립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백제로서는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 隋에는 과거부터 고구려와 적대적임을 표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고구려와의 협력을 노출시킬 수 없었다. 이는 곧 隋에 대한 적대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제는 隋를 기만하면서 고구려와 은밀히 협력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한 점에서 당시 백제의 외교는 隋와 고구려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외교나 균형외교로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隋를 기만하면서 고구려와 은밀히 통화하는 二重的 行態의 외교전술로 정의할 수 있고, 그 용어 역시 兩端策이나 兩面外交보다는 二重外交로 지칭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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