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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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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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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49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33 - 67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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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조에서 지배층 출신 이민족들의 일반적인 출사 방식은 ‘蕃將’이었는데 고구려 유민 1세대의 묘지명에서도 번장 출사의 경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은 번장으로 출사한 후 군공을 쌓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5품이 되면 아들과 손자까지 문음의 대상이 되었고, 3품 이상이 되면 아들, 손자, 증손까지 문음으로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이러한 당대의 율령관제의 구조 속에서 유민 1세대들은 관직과 면세, 면역이라는 사회경제적 특권을 代를 이어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군공을 세웠다. 그러나 모든 고구려 유민 1세대가 번장으로 출사한 것은 아니었다. 천남산의 묘지명에 기재된 藁街, 棘署, 北闕은 남산이 당조에서 역임했던 관직들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홍려객관과 홍려시에서 사신 영접과 통역의 임무를 맡았고 태상시에서도 업무를 맡았으며 황제의 近侍로서 기록을 담당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후속 세대로 갈수록 출사 방식과 관직의 유형은 다양화 되었을 것이다. 이는 漢化의 진전과 상당 부분 연관되는 문제로 번장 이외의 출사를 모색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泉毖의 사례가 주목된다. 천비는 태묘재랑으로 관직에 진출하였는데 이는 5품 이상의 자손 및 6품의 직사관과 청관의 자를 대상으로 한 문음으로, 문관 진출의 경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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