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24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133 - 163 (3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樂章歌詞 』에 <宴兄弟曲>과 함께 실려 전해지는 <오륜가>는 경기체가 형식의 노래다. 경기체가 형식으로 되어 있으면서도 지배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하는 訓民의 시대적 분위기를 짙게 반영하고 있다. 성종 23년(1492)에 新撰된 登歌樂章의 제7작 <配天曲>은 五倫歌調로 연주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오륜가>는 훈민의 분위기가 왕성해지기 시작한 세종 이후 성종 이전에 창작되었을 것이다. 權近의 <霜臺別曲>, 卞季良의 <華山別曲>, 작자미상의 <歌聖德> 등은 <오륜가>나 <연형제곡>과 함께 <한림별곡>을 依倣한 악장들이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건국된 조선에서 임금과 함께 한 축을 이루고 있던 개국공신들 가운데 악장 제작자들이 많았다. 임금은 개국공신들을 보호하고, 개국공신들은 임금의 통치권을 보장해주는 상보적인 관계가 바로 그것인데, 그 표면상의 명목이 바로 ‘충’이었다. 즉 임금이 신하들의 간언을 받아들일 때 신하들은 임금에게 충성을 바치게 된다는 상호 의무관계로 임금과 신하의 위치를 규정지었다. 이 점은 ‘二姓之合’이나 ‘아름다운 상서’로 규정한 부부의 관계, ‘울타리 안에서는 싸워도 밖에서는 남의 업신여김을 막아 생사 간에 서로 구해준다’, ‘형은 공손하고 아우는 형을 따라 질서정연하고 화락하며 즐겁다’는 형제의 관계 등도 군신의 관계와 같은 틀이다. 필자는 <오륜가>의 작자를 변계량으로 본다. 그가 조선 건국 이후 39세에 예문관 직제학이 된 이래 20여 년간 文柄을 잡고 외교문서와 조정의 辭命을 도맡아 활약했다는 점, 권근 이후 文衡의 지위에 올랐으며, 양이나 질의 면에서 조선 초 악장 제작의 1인자로 꼽을 만하다는 점, 그가 남긴 20여 편의 악장들은 조선왕조가 천명을 받은 사실의 찬양, 외교관계, 각종 제례 및 宴禮 등 다방면에 걸쳐 있는데, 이 가운데 <자전지곡> 같은 유교의 생활윤리와 직결되는 노래가 있다는 점 등이 그 근거로 꼽힐 만하다. 더구나 세종 조에 들어와 부쩍 왕성해진 훈민의 풍조와 󰡔삼강행실도󰡕같은 오륜관계 수신서가 편찬⋅배포되었다는 것은 <오륜가>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시대상황을 말해주는 동시에, 그런 일의 중심에 변계량 같은 악장의 전문가가 서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오륜가>의 문학사적 의미를 면밀하게 분석하는 일은 앞으로의 작업에서 수행해야 할 과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22)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