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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창혁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95호
발행연도
2019.9
수록면
289 - 330 (42page)
DOI
10.37331/JKAH.2019.09.95.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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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년 벌어졌던 매소성 전투 당시의 상황을 전하는 『三國史記』 新羅本紀 등의 여러 사료들을 새롭게 분석해보았을 때, 이 전투는 나당전쟁 개전 이래로 지속되었던 고구려 고지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북방전선’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비열홀(안변)을 비롯한 고구려고지 일부를 확보하고자 했던 신라의 의도와 당이 추진하던 기미주 체제 사이의 갈등이 있었다.
따라서 기존의 이해와는 달리, 675년 2~9월 전투의 주요 전장에 대해서는 매소성등이 있었던 임진 · 한탄강 전선의 상황보다도 더 이북지역에 해당하는 석현성(개풍) · 아달성(안협) · 적목성(회양) 등지의 상황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 같은 북방전선의 거점들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소모전이 원인이 되어, 675년 당시 당 군은 매소성을 비롯한 경기 북부 일대의 신라군의 방어선을 끝내 넘어서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 675년의 전투, 더 나아가 나당전쟁의 결과는 당 군의 ‘방기’가 아니라 명백한 신라의 전략상의 승리로 규정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이처럼 북방전선에서 얻어낸 신라의 승전은, 당 군의 철수 이후 681년까지 이어지는 바 비열홀 · 천정군(덕원) 장악과 같은 고구려고지 진출이라는 실질적인 성과와도 밀접하게 연결될 여지도 있다. 즉 결론적으로 나당전쟁 시기 북방전선의 양상은 당시 신라에 있어 비록 일부 지역이나마 고구려고지를 통합하려는 분명한 의지와 실질적인 정책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매소성 전투 관련 기록의 재검토
III. 675년 전후 북방전선의 추이와 매소성 전투의 의의
IV. 매소성 전투 이후 신라의 비열홀 재진출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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