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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민경식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신학정보연구원 Canon&Culture Canon&Culture 제11권 제2호 (통권 제22호)
발행연도
2017.10
수록면
91 - 120 (30page)
DOI
10.31280/CC.2017.10.11.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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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소고는 종교개혁자들의 성서, 특히 츠빙글리가 시작한 스위스의 종교개혁운동에서 『취리히성서』가 차지하는 사회적, 정치적 의의와 『취리히 성서』의 특징을 관찰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츠빙글리의 선구자들, 즉 잉글랜드의 존 위클리프, 보헤미아의 얀 후스, 그리고 독일의 마르틴 루터를 언급한다. 그들이 번역하거나 사용하였던 자국어 성서가 그들이 개혁운동에 어떤 중요성과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고, 이러한 배경에서 츠빙글리의 개혁운동과 『취리히 성서』를 연구한다.
종교개혁은 단지 종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유럽 사회 전체를 뒤흔든 거대한 혁명이었다. 로마가톨릭 교황을 구심점으로 일원화되어 있던 유럽사회가 다원화 사회로 변화되는 과정에 종교개혁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로마가톨릭교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려고 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로마가톨릭에 항거하며, 교황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권위와 구심점으로서의 교황의 자리에 성서를 올려놓았다. 그들에게는 성서야말로 교황의 전통적인 권위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종적인 해석의 권위를 교황이 쥐고 있었던 라틴어 불가타 성서로는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기 적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자국어 성서가 필요하였다. 특별히 루터는 불가타가 아니라, 원어에서 독일어 성서를 번역하였다.
종교개혁자 츠빙글리 역시 로마가톨릭 교회와 로마교황에게 도전하였고, 교황의 권위를 능가하는 권위로 성서를 제시하였다. 신약의 경우, 독일어성서를 루터가 이미 번역, 보급하였지만, 츠빙글리는 이것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알레만어로 개정하였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루터의 성서 본문을 받아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본문을 선택하기도 하였다. 구약의 경우, 츠빙글리가 루터보다 먼저 독일어성서를 번역하고, 출판하였다. 『취리히 성서』는 원어에서 번역된 최초의 독일어완역성서이다. 바로 이러한 『취리히 성서』가 스위스 종교개혁의 구심점이 되었다.

목차

들어가는 말
1. 츠빙글리 이전의 종교개혁자들과 성서
2. 츠빙글리(1484-1531)와 스위스의 종교개혁
3. 츠빙글리와 성서
나가는 말
참고문헌
〈초록〉
〈Abstract〉

참고문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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