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제송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정신문화연구 2016 가을호 제39권 제3호 (통권 제144호)
발행연도
2016.9
수록면
7 - 47 (4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전근대 시기의 행렬은 행렬 주인공의 지위와 신분을 상징하는 의장(儀仗)과 탈것(이동수단), 수행원의 구성과 숫자를 통해 위의(威儀)를 드러내었다. 조선시대 관원들에게는 품계에 따라 탈것과 수행원의 숫자가 『경국대전』에 정해져 있었다. 의장은 왕의 명령을 받고 지방이나 외국에 파견되는 신하에게만 절(節)과 월(鉞)이 특별히 주어졌다. 조선후기 지방관들은 절·월 외에 군대의 형명(形名), 국왕의 명령서인 교서(敎書)·유서(諭書), 관인(官印)·병부(兵符) 등을 앞세우고 쌍마교(雙馬轎)를 타고 행차함으로써 위엄을 드러내었다.
관원의 행렬은 18세기 후반 정조 연간부터 활발하게 시각화되었다. 이 시기 왕권 강화와 국왕 행차를 시각화한 왕실 기록화의 활발한 제작분위기 속에 다양한 관원의 행렬을 시각화한 이미지들이 평생도 병풍으로 정형화되었다. 특히 지방관인 개성유수의 행렬은 의장인 절·월과 함께, 교서와 유서를 선명한 붉은색 통에 담아 시각화하여 지방관 행렬도의 전형이 되었다. 또한 40개의 대기치와 군영의 악대를 앞세운 관원의 행차 모습을 독립된 행렬도로 제작하기도 하였다.
19세기 관원의 행렬은 감영이나 유수영 등 행정 및 군사 요충지를 그린 연폭 실경도 병풍에 대기치를 앞세운 지방관의 군사 행렬을 시각화한 것이 특징이다. 대원군 집권기에 군사제도 정비와 무신들의 지위신장 및 무비(武備)를 숭상하는 사회적 분위기 아래 일련의 <평양도> 병풍 속에는 410여 명으로 이루어진 관찰사의 대행렬이 시각화되었다. 이렇듯 관원 행렬은 왕권이 강화된 정조 대와 군권이 강화된 고종 대의 시대 분위기 속에 그와 관련한 상징물들을 강조하여 시각화한 특징을 보인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관원의 위의와 행렬 구성
Ⅲ. 관원 행렬의 시각화 양상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참고문헌 (81)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7-151-001097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