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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73號
발행연도
2012.3
수록면
101 - 13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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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는 국왕 주도하에 왕실 의례의 정비와 의궤를 통한 정리작업이 활발히 진행된 시기이다. 또한 새로운 반차도들이 등장하고 표현양식 면에서도 뚜렷한 특징을 보여 왕실 의례와 반차도의 관계를 잘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반차도의 성격을 분명히 하기 위해 18세기 이전의 반차도를 개괄하였다. 그리하여 반차도가 행렬의 차례를 시각화한 실용화로서, 의식 전에 제작되어 국왕의 재가와 실무에 쓰인 내입 반차도와 의식 후 후대의 相考와 보존을 위해 제작된 의궤 반차도를 구분하였다. 그리고 17세기 중엽부터 좌향하여 나아가는 중앙 열과 중앙 열을 향해 顚倒된 바깥 열을 한 화면에 복합시점으로 묘사하는 삼단구도가 정착하며, 반차도의 수준을 높이고 제작량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印刻彩色法을 도입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 기법은 나무에 도장처럼 양각상을 새겨서 찍고 모자와 持物등을 그려서 상을 완성한 후 채색을 가하는 방식이다.
18세기에 새로 등장하는 반차도들은 왕실 의례에 예모를 갖추고 그 절차를 관리하려는 국왕의 의지로 제작된 것이다. 열조는 禮典을 재정비하고 각종 정례들을 마련하는 1740년 이후 수가 및 친영 거둥 반차도와 〈의장도〉를 탄생시켰다. 이는 왕실 의례의 엄숙한 집행과 함께 의례의 중심에 선 국왕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영조대의 거둥 반차도는 정조대의 〈정리의궤 반차도〉에 이르러 독자적인 행렬도로 발전하였다. 〈정리의궤 반차도〉는 18세기 성대한 왕실 의례와 원행의 威容을 집약해낸 기록화로서, 몇 건 한정 제작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판각으로 다량 복제되었다. 정조는 이를 반포함으로써 관련 부서와 사고에 상고의 대상으로만 秘藏되던 의궤 반차도가 왕의 盛業을 상징하는 행렬도로서 일반인에게 열람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내입 반차도 중 실무용 반차도를 분아 반차도라는 명칭으로 定式化하는 관행을 마련하였다.
18세기 반차도의 제작에는 인각채색법이 널리 활용되며, 어람용에서는 고급종이와 채색, 필선을 더하여 실무용과 차등을 두었다. 또한 중엽을 전후하여 중앙 열의 가마를 중심으로 사실적인 공간묘사가 이루어지고 화면을 다채롭게 변모시키며 〈정리의궤 반차도〉에 이르러 비약적인 발전상을 보인다. 제작 면에서는 세트 인각과 동일 인각을 공동으로 활용하는 도화서 내 업무관행과 궁중회화에서도 인각을 활용하는 모습을 확인하였다. 이렇듯 표현과 제작기량 양면의 발전적인 면모 이면에는 강력한 왕권에 의한 후원이 있었던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왕실 의례와 18세기 이전의 반차도
Ⅲ. 18세기 왕실 의례의 정비와 반차도의 다양화
Ⅳ. 18세기 반차도의 양식적 특징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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