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21號
발행연도
2004.6
수록면
875 - 901 (2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선암사 괘불〉은 1753년에 제작되었다. 괘불을 제작할 당시 괘불에 종교적인 신성성을 부여하기 위해 眼藏을 만들어 題藏囊 속에 봉안하고, 1757년에는 괘불함을 만들어 괘불을 보관하였다. 복장낭 안에서는 여러 점의 發願文과 喉鈴筒, 多羅尼 등이 나왔는데, 이들은 〈선암사 괘불〉의 도상과 제작기간, 함께 제작된 불화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선암사 괘불〉은 비단에 채색을 사용하여 그린 작품으로 크기는 세로 1260.5㎝, 가로 678㎝이다. 화면에는 중앙에 석가여래를 배치하고 상단 좌우에 多寶塔 안의 多寶如來와 十方諸佛을 묘사하고 있다. 제작에 참여한 화승은 金魚로 隱奇, 致閑, 來淳, 慕英, 持彦과 畵師로 卽?, 月桂, 鳳察, 策花, 戒坦, 快慧, 快允, 印戒로, 18세기 전반에 활약하였던 義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괘불의 화면에는 거대한 석가여래 독존을 배치하였는데, 석가는 신체비율이 6등신 정도로 어깨가 매우 넓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거대한 화면을 아래서 올려다보았을 때 일어나는 시각적인 효과를 고려하여 제작한 것 이다. 또 석가의 단순한 불신과 복잡한 의습 문양의 대비, 홍색과 녹색의 대조 등을 잘 활용하여 작품을 매우 인상적으로 만들고 있다.
〈선암사 괘불〉에 나타나는 화풍은 18세기 중엽에 여러 지역의 괘불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서, 義謙에 의해 형성된 양식이 널리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義謙 화풍의 뛰어난 작품성과 불화의 제작 유통 방식에 의해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선암사에서는 괘불을 제작할 때 수십점의 불화가 함께 제작되어 本寺와 庵子, 여러 사찰에 나누어 봉안되었는데, 이처럼 한 곳에서 불화를 제작하여 여러 곳에 나누어 봉안하는 방식도 18세기 양식이 일반화하는데 일정부분 기여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선암사 괘불〉은 약 2개월 정도의 작업기간이 소요되었다. 그처럼 큰 불화를 제작하려면 현대의 기술로도 6개월 이상 걸린다고 하는데, 어떤 제작 방식과 화승들의 조직적인 제작 구조에 의해 그것이 가능했는지는 앞으로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목차

요약
Ⅰ. 머릿말
Ⅱ. 선암사의 연혁과 유물 현황
Ⅲ. 괘불 관련 유물: 복장낭과 괘불함
Ⅳ. 〈선암사 괘불〉의 형식 및 양식적 특징
Ⅴ. 맺음말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09-910-016647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