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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익구 (동아대학교)
저널정보
대한일어일문학회 일어일문학 日語日文學 第105輯
발행연도
2025.2
수록면
395 - 410 (1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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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 직후, 일본 언론의 한국전쟁 보도는 GHQ와 일본 당국의 언론통제정책으로 소극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으며, 주로 미군의 발표와 외국 통신사의 전문 기사에 의존하여 보도해야만 했기 때문에 당연히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정보에 한정하여 전달되는 양상이 전개되었다. 그런데 일본 언론의 한국전쟁 보도는 1951년 7월 11일에 일본인 특파원의 한국 전선 파견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인 특파원은 휴전회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휴전회담이나 전황에 관한 보도보다는 한국(인)의 대일감정과 인식, 한일관계 동향 등에 관한 보도를 비중 있게 다루게 되었다.
한국전쟁에 대한 일본인 특파원의 보도는 먼저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의 모습을 안타까움과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편에 식민주의 관성이 여전히 작동하는 식민지 종주국 지식인의 향수와 우월감이 묻어나는 보도가 반복되고 있었다. 또 표면적으로는 한국(인)의 대일감정과 인식을 보도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당시의 일본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재군비문제, 대일강화문제)를 한국인의 시각을 동원하여 일본의 독자에게 그 필요성과 당위성을 효과적으로 호소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부분은 일본인 특파원의 보도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 통치로 빚어진 역사 인식의 문제를 희석시키는 한편 ‘제국’ 의식의 정당성을 용인하는 논리를 ‘반공’이라는 냉전 이데올로기로 불가시화하고 있었다. 당연히 식민 통치를 둘러싼 죄책감과 자기반성은 결여된 채 전후 일본의 타자 인식은 구축되고 있었다.

목차

Abstract
1. 서론
2. 일본 신문의 한국전쟁 보도와 일본인 특파원의 파견
3. 일본인 특파원의 보도-한국의 대일감정과 한일관계 동향
4.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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