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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저널정보
연세사학연구회 학림 학림 제43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33 - 62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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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이후 무장저항은 대한제국 군인을 비롯하여 민중까지 아우르는 국권회복운동으로 발전하였다. 1910년 강제 병합 이후에는 독립운동으로 구체화하여 국외 독립군기지 건설 등 국외까지 운동범위를 넓혔다. 민족의 저항 의지는 일본의 무력에 대항하면서 보다 대상과 범위가 명확해졌고, 활동 역시 구체적으로 발전하였다. 그 중심에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함께 일본군이 기반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대한제국을 보호국화하였지만, 지배력은 한계가 있었다. 특히 당시 국제 정세와 일본 국내 상황은 대한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기에는 불충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육군은 일본 내 주도권 확보를 위해 대한제국을 영향력 아래에 두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한제국을 통한 일본육군의 주도권 확보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상 일본육군이 일본 내에서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러일전쟁 이후 조선 주둔 일본육군의 배치와 증설 과정을 통해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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