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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우락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89호
발행연도
2024.6
수록면
203 - 230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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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6세기 예천 지역의 학풍과 약포 정탁의 학문을 다루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16세기는 사화기를 거치면서 사림파가 수난을 맞기도 하지만, 이러한 험난한 경험을 통해 이들의 사상은 오히려 예각화될 수 있었다. 예천은 낙동강 본류가 시작하는 그 연안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학가산과 내성천 등의 산수를 거느리며 유교문화를 만들어 갔다. 정몽주의 제자인 호명의 조용, 조용의 제자인 보문의 윤상으로 이어지는 성리학 계보를 만들며 예천의 성리학은 본격화된다. 이황이 조용과 윤상을 들어 "성리의 연원은 알기가 쉽지 않은데, 예천은 두 공의 이름을 일컫고 있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의 발언이다. 강안학은 회통성, 실용성, 독창성이라는 학문 특성을 지닌다. 이 가운데 예천 지역은 회통성과 실용성이 강조되고 독창성은 비교적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황의 친인척이 있고, 그의 제자들이 세거 혹은 유입되기도 하지만 예천에서는 퇴계학을 천착하며 이기심성론을 깊게 받아들여 탐구한 흔적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16세기 예천의 강안학을 대변하는 유교 지식인은 정탁이다. 그 역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여주는 독창성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황과 조식의 제자가 되면서 퇴남학의 회통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高坪洞契의 <勸勉條>와 <禁制條>에서 보여준 구체적 사례와 임진왜란 과정에서 보여준 실무역량은 정탁 학문의 실용성이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이라 하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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