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수환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한국학 2019 겨울호 제42권 제4호 (통권 제157호)
발행연도
2019.12
수록면
39 - 75 (3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현대 농촌개발의 동력을 토착농촌에서 발견하기 위한 모색의 일환으로 조선 17세기 동계를 호혜(Reciprocity)의 관점에서 분석을 시도했다. 분석 사례는 경상도 경주 국당리에 전하고 있는 동계문서이다.
국당리는 임진왜란 직후 특정 인물 주도로 ‘상동계(上洞契)’가 조직되고 경조사의 부조를 행하여 400년 동안 여섯 마을의 여섯 성씨가 동계를 계승하고 있다는 ‘전통’을 ‘발견’하고 계승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전통에 대해 17세기 동계 문서를 실증적으로 분석하여 전통의 실체를 밝히고, 동계구성원 사이의 호혜의 원리를 검토했다. 국당리 동계는 1627년경 국당리를 비롯한 4-6개 마을에 거주하던 8개 성씨의 중심인물들에 의해 설계(設契)되었으며, 17세기 동안 12개 성씨 118명이 계원으로 출입하였다. 동계의 규약은 국당리 주변 마을의 사례를 참고했을 경우 향약의 원리를 원용하고 있었으며, 호혜를 위한 제도(Institutions)로 동약(洞約)을 운영했다. 그리고 동계의 호혜 내용은 현전하는 자료 중 상사(喪事)의 부물(賻物)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계원의 친족 범위를 대상으로 호혜를 위해 부조하는 규약이었다.
17세기 경주 국당리 동계는 다수 마을의 다수의 성씨에 의해 창설되어 호혜의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부조라는 호혜를 실천했다. 이러한 동계의 실체에 대해 18-19세기 동안 상동계 전통으로 확장되어 오늘에 계승하고 있다. 조선후기 동계의 전형을 보여주는 국당리 사례는 현대 농촌개발에 있어 호혜가치 작동을 위한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가능하게 했던 토착적 배경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국당리 상동계(上洞契) ‘전통(傳統)’의 발견
Ⅲ. 동계, 국당리 마을개발
Ⅳ. 동계와 동약, 그리고 호혜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s

참고문헌 (42)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0-151-000109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