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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병훈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저널정보
국문학회 국문학연구 국문학연구 제49호
발행연도
2024.5
수록면
5 - 36 (32page)
DOI
10.52723/JKL.49.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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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 안중근(安重根)이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저격한 의거는 국내외의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이는 소설, 전기를 비롯하여 연극, 시가(詩歌) 등으로 다양하게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었다. 기존 수많은 안중근 연구 가운데 안중근 관련 시가에 대해서는 중국 쪽에서 창작한 시가만 몇몇 논문에서 다뤄졌을 뿐, 한국인 창작 시가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는데, 본고는 한국인 창작 안중근 관련 한시(漢詩), 가사(歌辭), 창가(唱歌) 장르를 주목하였다. 항일(抗日)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안중근에 대해 노래하는 것은 항일의식의 표출 및 운동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었다. 한시는 여전히 한글과 병존하며 한시 장르의 생명력이 유지되었다. 주로 저자 사후 혹은 해방 이후 발간된 개인문집 등을 통해 당시 안중근 의거와 그의 죽음에 대한 공감, 추모, 분노 등이 표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사는 주로 의병가사․창의가사에서 의병운동과 같은 항일 관련 여러 인물들을 언급하는 가운데 안중근을 항일의 기호로서 부분적으로 소환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신종교와 관련된 인물이 창작한 경우도 있어,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창가는 기존 전통 시가장르와는 다르게 서양의 영향을 받아, 직접적으로는 일본의 영향을 통해 국내에 빠르게 퍼졌으며, 곡조와 연관되어 노래부른다는 특징으로 인해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데 있어 보다 효과적이었다. 이로 인하여 일제당국은 법령적 근거를 마련하여 항일의식을 담은 창가집을 압수, 수색하고 또 관련자를 처벌하기도 하였다. 안중근은 창가를 통해 노래로 불리며 민족의식을 드높이는 인물로 표상되었다. 한시와 가사는 일제강점기에 있어 이미 옛 시대의 유산으로 치부된 장르였으나,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며 식민지 시대의 아픔과 항일에 대한 의지를 안중근이라는 아이콘을 통해 담아내고 있었으며, 새로 유입된 창가 역시 이러한 역할에 일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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